사진=걷는사람들
사진=걷는사람들

 

구선아(작가, 책방 연희 운영자)에디터 언제부턴가 나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꽃과 나무, 숲의 변화와 자연의 움직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유기적 질서가 도시의 합리적 논리보다 안전하고 안정하고 올바르다 생각이 들면서 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막막한 곳에서 가장 힘차야(「뿌리, 하고 말하면」 중)" 단단해지는 땅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일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난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언어를 조금 더 귀담아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봄을 담을 새도 없이 봄이 없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에게 봄이 스치듯 지나갔다. 코로나19가 봄을 가져간듯 봄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길가에서 마주친 라일락이나 잎을 피우기 시작한 빨간 장미가 더욱 반갑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다가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야."라고 말하던 선배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는 계절이다. "꽃피는 며칠을 묶어 두고서 시무룩한 것들은 잊고(「꽃피는 며칠」 중)" 봄을 보내고 여름을 제대로 맞이하고 싶은 요즘이어서 일까. 움직이는 계절의 모든 것을 붙잡고 싶다. 

"내 잘 익은 사과를 나눠주거든 달큼하게 한입 깨물며 가을이 오기까지 시간을 기억해줬으면 싶네(「사과나무의 둘레」 중)"

황형철의 시는 자연을 이야기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서처럼 동경하는 자연이 아닌 우리 일상세계 안의 자연이다. 베란다 창문 사이 새들어오는 빗줄기에서, 옆 빌라에서 넘어 온 자두나무 가지에서, 마당에 떨어진 감 한 알에서 마주하는 자연에서,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하는 바다에서다. 그래서 황형철의 시를 낭만주의 시라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낭만주의가 개인의 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현실 혹은 일상세계에서 벗어난 이상세계를 말했다면 황형철은 자연의 그리움이 아닌 자연을 통해 자연과 우리와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사건을 말한다. 이상적 이미지가 아닌 현실적 이미지와 맞닿고 있다. 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누군가는 아픔인, 누군가에게는 미움일지 모를 4.16세월호, 제주 4.3항쟁운동, 5.18민주화 운동과 같은 현실적 사건도 담담히 자연의 언어를 빌어 말한다. 

사실 현실적 사건보다 이상적 이미지에 젖어 있고 싶은 날이 있기도 하다. 현실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으니까. 어떠한 낭만 속에서도 상처도 아픔도 두려움도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 많으니까. 그래도 황형철의 시처럼 조금은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들이 있어 다행이다. "팔도 다리도 빨랫줄에 좀 걸어두고 고단한 몸덩이쯤이야 바람 부는 대로 그냥 맡겨 놓고선 마냥 하늘거리고 싶은(「잘 마른 빨래 같은 날들」 중)" 나지만, 그래도 오늘의 현실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마주하기로 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자연의 시간은 이상과 현실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흐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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