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널리즘 = 알량한(필명) 에디터] ‘SF 장르의 불모지’라는 말은 한국의 SF를 거론할 때면 자동적으로 따라붙던 수식어였다. 하지만 SF계는 최근 몇 년간 SF 문학상의 재정,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의 출범, 젊은 작가와 팬덤의 등장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불모지라는 수식어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이런 변화의 정점을 찍으려는 듯, 한국 SF의 지금을 가늠할 수 있는 잡지가 나왔다. 이름도 선언적인 《오늘의 SF》다.

잡지는 무크지로서의 성격(책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을 십분 활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SF의 장을 둘러싼 비평과 인터뷰, 칼럼과 리뷰들이 무려 7편의 SF 중단편의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잡지의 백미는 역시 수록된 SF 소설들인데, ‘오늘의 SF’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라는 탄탄한 필진이 뒷받침된 탓이다.

작품 길이로만 따지면 초단편부터 단편과 중편까지, 작가들의 경력으로만 보면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으로 데뷔한 신인부터(김현재 「평원으로」, 박해울 「희망을 사랑해」) 1세대 SF 작가로 알려진 듀나(「대본 밖에서」)까지, 그 스펙트럼이 제법 넓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인공지능(김이환 「친절한 존」), 외계행성(해도연 「밤의 끝」), 추리극(김창규 「복원」) 등으로 다채롭다. 거기 더해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이 눈에 띈다. 소설만 보면 웬만한 SF 앤솔로지에 버금가는 포만감을 선사한다.

특히 흥미로운 작품은 듀나의 「대본 밖에서」다. TV 드라마 속 세계가 현실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된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SF의 영역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나아가 SF 장르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

비평과 칼럼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두 개의 인터뷰(영화감독 연상호와 작가 배명훈)와 하나의 작가론(「구병모론-숨을 증언하는 자」)이다. 이는 새로운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연상호와 배명훈, 구병모는 영화와 문단 문학이라는 익숙한 영역과 SF의 접점에 위치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은 SF만의 전문적인 비평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단 문학에 비해 아직까지 비평의 토대가 탄탄하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다수의 칼럼들을 전문 비평가들이 아닌 SF 작가들이 채우고 있는 것도 작가들이 비평 부분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 말은 반대로 한국 SF 작가들의 역량이 그만큼 크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편집위원을 맡은 고호관, 듀나, 정세랑, 정소연은 SF 작가일 뿐 아니라 다수의 번역, 편집 작업을 통해 출판 전반의 역량을 길러온 이들이다. 수록된 작품들의 스펙트럼과 작가들의 역량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2019년의 시점에 한국의 SF 잡지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수긍할 것이다. ‘한국은 SF 불모지’라는 말은 ‘한국 SF에 대한 인식의 불모지’라는 말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역시나 관건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잡지를 내놓느냐이다. 불모지가 아님을 선언하고 나온 잡지이기에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최근 젊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장르인 만큼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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