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임기가 약 두 달 남았지만, 후임자를 두고 많은 하마평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 인사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엔 ‘관’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는 여론입니다.

은행연합회장은 정부와 정치권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맡습니다. 특히 사모펀드 부실 사태와 뉴딜펀드 같은 대규모 정부 지원 사업 등 은행권 내 굵직한 현안이 쌓여 있는 만큼 제 목소리를 내줄 인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3년 전 낙하산 근절을 외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인데 그만큼 은행권이 절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은행만의 이득 아닌 금융시스템 안정 명분 내세워


과거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은행권을 압박할 때마다 은행연합회장은 전면에 나서 업권을 대변해 왔습니다.

2006년 은행과 증권사 간 소액지급결제업무를 두고 각 협회장이 입씨름이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지창 회장은 ‘윔블던 효과’를 거론하며 단숨에 여론의 이목을 끌어당겼습니다.

유지창 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몰려들 경우 경험과 노하우 면에서 비교 우위가 있는 자산관리업무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증권사 지급결제업무 허용은 외국 대형 투자은행의 경쟁력을 강화시켜 소위 윔블던 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윔블던 효과는 영국의 테니스대회인 윔블던 대회가 외국 선수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 영국인 우승자를 배출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을 말합니다.

지급결제업무 역시 증권사보다 자본력이 앞선 외국계 금융회사가 안방을 차지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유지창 회장의 뒤를 이어 신동규 회장도 정치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선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통해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신동규 회장은 “파생상품 규제가 강화될 경우 시장거래자가 급감해 세수확보의 당초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국회에서 통과 대기 중인 보험사 지급결제기능 부여에 대해서도 신 회장은 은행권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험사 지급결제기능 부여는 금융시스템 전반을 뒤흔드는 일이 될 것이며 예금 등 수시입출금 상품이 없는 보험사에 이 같은 기능을 부여한 나라는 전세계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지창, 신동규 회장은 당시 발언은 은행권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일 수 있지만, 금융시스템 안정이라는 명분도 분명했기에 여론을 뒤집을 수 있었단 평가도 있습니다.


정부 잘못된 선택할 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부와 한판 붙은 은행연합회장도 있습니다.

박병원 회장은 정부가 창조경제를 추진할 때 “금융이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 낙후돼 있다”며 “창조금융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 더 급하다”고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창조금융 전에 선진국 모방부터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너무 솔직한 답변이라 은행권이 오히려 당혹스러웠단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 회장은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각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박병원 회장은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해야 하지만 당국이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입찰에 불이익을 주는 등 손님을 다 쫓았다”며 “흥행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흥행을 바라니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박병원 회장이 말한대로 정부는 고집을 꺾고 지분을 쪼개 팔아 우리금융지주는 지금의 과점주주 형태로 민영화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거론된 역대 은행연합회장은 모두 관 출신입니다. 유지창 회장이 행시 14회, 신동규 회장은 행시 14회, 박병원 회장도 행시 17회로 모두 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거쳤습니다.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이들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모두가 무시할 수 없었던 배경입니다.

이 때문에 은행권도 이들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관 출신이 ‘Mr. 쓴소리’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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