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의체의 밀실합의 파탄
문체부가 지난 7월 15일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민관협의체는 지난해 7월 부터 올 6월 3일까지 1년간 총 16회의 회의를 비밀리에 개최했다. 지난해 20만 국민청원 후 부터는 또 20만 청원을 주도했었던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이 아니라 역시 밀실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단체를 선택하여 구색을 맞추고는 비밀리에 민관합의(?)를 진행해 왔다. 
그 합의내용은 참담했다. 현행 2014년 체제의 유지 합의였다. 재정가 기간을 6개월 당겼지만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를 발표된 대로 소비자 후생이라고 믿고 추진하였다면 무지한 사람이고, 소비자 후생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도 추진하였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사악한 사람들이다. 2014년 체제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그때 약속들이 자료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도서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그들은 2014년 체제가 되면 신인작가들이 대거 등장하여 창작의 다양성이 고양되고, 그 결과로 도서 소비자들은 유엔 유네스코가 보장한 최고수준의 ‘문화 다양성’을 향수할 수 있을 것이며, 중소출판사와 중소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출액이 증가하여 헌법상 ‘경제 민주화가’ 곧 이루어 질 것이라고 약속을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래도 최소 50퍼센트는 실현되겠지라는 바램 정도는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도서 소비자들이 문체부와 공공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약속을 믿고 2014년 체제에 기대했던 결과는 참담했다. 종이책으로 등단하는 신인작가는 2년이 넘게 찾아 볼 수 없고, 실망한 도서 소비자들은 떠나고 돌아 올 기약이 없다. 중소출판사 대표들은 책을 맡기고 떠난 후 소식이 없으며, 중소지역 서점은 20년 넘게 도서정가제만 되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도서관 납품권 독점만 내심 바란다. 책을 소비자에게 팔아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사실상 버렸다. 그러므로 위기의 핵심인 공급률 문제는 출판업계와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지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완반모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할 때가지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바보야, 문제는 공급률이야’, 뉴스페이퍼, 7월 22일).

2014년 체제의 종말
이로써 2014년 도서정가제 체제는 종말을 고하는가. 오늘 민관협의체에 참여하였던 출판단체들은 긴급 공개토론회를 열고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간에 문체부는 전자책 업계를 비밀리에 만나 비밀리에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누가 참석했고 어떤 내용으로 진행 했는지는 언론에 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추측하기로는 출판업계 등 기존 민관협의체 구성단체들을 대신하여 밀실합의를 기꺼이해 줄 상대방을 물색하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대가로 개별적으로 당근을 몰래 챙겨 주는 선에서 타협점을 비밀리에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2014년 체제는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인가. 어쩌면 이를 믿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긴절히 바라는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문체부와 진흥원, 출판단체들은 지난 6년간 한치의 빈틈도 주지않고 2014년 체제를 잘도 유지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일개 관료가 국정의 핵심 어젠다인 혁신과 공정에 반하는 정책을 밀실에서 추진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국민청원 20만을 중요한 국민소통 창구로 인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무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불과 3년전에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축출한 위대한 국민을 가진 나라의 국정이라고 믿기에는 자괴감이 들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주인인 국민을 그림자 취급하는 비상식적인 일처리는 정말 끔찍하다.
그런 점에서 과연 2014년 체제가 이대로 끝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바보야, 문제는 20만명의 국민청원이야!
정부는 누구를 보고 누구를 위해 국정을 운영해야 할까. 당연히 국민이라고 열이면 열이 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국민’이 어디에 있으며 누가 ‘국민’을 인정하고 국민의 ‘뜻’을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정에 신뢰할 만한 프로세스가 없다. 열이면 열 모두 다르다. 사실 국민은 정부관료의 관념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자아로 존재할 뿐이다. 애초에 국민은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런 점에서 가공된 사기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박 모 의원님 ㅎ비서관 말처럼 민관협의체에 없는 국민이 국민이냐라는 말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완반모는 2019년 10월 11일부터 한달 간 토론회 개최, 온라인 카페 글 올리기, 미디어에 기고하고 보도자료 돌리고 인터뷰하느라 한시도 쉴틈이 없었다. 20만명의 국민청원은 이루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한 박양우 장관의 답변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국민은 평소에는 바보가 된다. 그러나 비상한 상황이 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돌변한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고 그 딸인 박근혜가 그래서 쫓겨 났다. 
문체부 담당 국장님과 과장님은 누구보다 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사법시험 다음으로 어렵다는 행정고시를 통과했고, 강력한 이익단체인 출판단체들과의 밀실합의조차 국민청원 20만 명을 고려해 과감히 걷어 냈다. 다시 3년 후에는 어떤 갈등도 밀실합의도 불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종이책으로 등단하겠다는 예비작가들이 물밀듯이 닥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6년전 약속을 지킬 것이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관행’이라는 존재다. 누구나 습관의 노예이듯이. 부디 불행한 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누구도 국민의 일반의지에 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재광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 대표, law@cyb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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