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 2020년 여름호 [사진 = 유수진 에디터]

납작해진 치약을 돌돌 말아서 짤 때 치약이 하는 말, 다 쓴 샴푸 통에 물을 부어서 흔들어 쓸 때 샴푸 통에서 쏟아지는 비아냥, 작아진 빨랫비누를 스타킹에 집어넣을 때 비누 조각들이 속삭이는 목소리, 귀를 막아도 들리는 그 소리가 이제는 반갑다. 덕분에 나는 ‘창작’이라는 근사한 단어를 버리고 ‘배설’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은정의 오후의 문장, 「나만의 익스페리멘틀」 중에서 

[뉴스저널리즘= 유수진 에디터] 『시마』 2020 여름호가 발간되었다. 시마는 작년 여름에 반년간지로 창간호를 내며 출발한 문예지이다. 올해 봄호부터 계간지로 체재를 바꾸고 이제 네 번째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문학잡지나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원고 의뢰가 알음알음 이루어지다보니 조용히 글만 쓴다고 원고 청탁 전화를 받는 건 아니다. 이에 도서출판 도훈, 이도훈 대표는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 있는 숨은 작가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글을 발굴해서 좋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등단과 미등단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기획으로 이어졌다. 시마는 시를 사랑하는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이번 여름호에는 심승혁, 최교빈, 성가영, 이충기 외 20여편의 응모작이 선정되었으며 홍철기 외 4인의 디카시 응모작도 실렸다. 이에 더해 다양한 읽을거리가 제공된다. 조향순 시인, 신정근 화가, 신지영 작가, 이은정 소설가, 조성찬 박사, 김영빈 디카시인이 매호마다 특색 있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예술가 부부인 김미희 시인과 김선하 사진작가의 시와 사진도 실린다. 분홍색 표지를 펼치면 시와 에세이가 잘 어우러진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조향순 시인의 ‘고양이와 산다’ 코너에선 고양이 두 마리와 단란한 가족을 이룬 시인의 삶의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린아 시인의 ‘암호를 풀 땐 노래를 불러 줘요’ 코너에선 암호가 필요한 순간마다 시인이 소환하는 비밀 무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번 여름에 이린아 시인이 소환한 것은 종이인형이다. “낯설지만 당당한 다정들”을 통해 “바꿔 입고 싶은 옷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게 되었다”는 시인의 고백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신지영 작가는 동시를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선보였는데 그 시선이 무척 따뜻하다. 김영빈 시인은 근무지 근처에서 만나는 동백이라는 사슴과 교감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목가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신정근 화가가 소개하는 ‘야간 비행’ 이라는 에세이에선 스치듯 지나는 여행의 풍경을 스케치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호주에 거주하는 조성찬 박사는 ‘여행인문학’ 코너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벌어진 호주의 상황을 그로테스크한 사진과 함께 표현했다. 여름호부터는 이병철 평론가가 응모작품들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덧붙였다. 쓰고 또 쓰면서 자신과 대면하는 응모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해람 시인이 연재하는 ‘칼로 새긴 시’ 코너에선 시인이 직접 나무판에 새겨 넣은 시를 소개한다. 삶을 향한 진지함과 시를 향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산문이 함께 연재된다. 그 외에도 시마가 선택해 원고를 의뢰한 신작시와 ‘나의 시 나의 생’ 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번 여름호에서는 스스로를 “얼치기 농부, 얼치기 시인”이라고 말하는 정대구 시인의 시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가을호의 응모는 오는 8월 10일(월)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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