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선 여름호에 수록된 이무권 시인의 글 [사진 = 김규용 기자]

문학선 2020 여름호 특별기고에 게재된 이무권 시인의 글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의 까만 하나 되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해당 기고문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및 특정 문학인에 대한 악의적 공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무권 시인의 글은 문학선 봄호에 게재된 전영규 평론가의 글,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는 하나다’를 반박하고 중앙대 전 교수 감태준 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이다. 감태준 씨는 2007년 12월 ‘제자 성추행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으며 이에 반발해 교육부 소청심사 청구 및 행정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모두 패소했다.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을 비롯한 문학 창작자의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최근,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글이 발표됨에 따라 일각의 우려가 크다. 더군다나 그간 문학계에서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비롯해 학교, 과외, 문학 권력 안에서의 여러 성폭력 문제가 대두되어왔다. 이에 따른 징계 등 실질적 해결책은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작가와 독자들의 윤리 의식은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문학선 가을호를 통해 발표된 이무권 시인의 ‘만드는 자, 쓰는 자, 읽는 자의 까만 하나 되기’는 공산당 선언의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구절을 패러디하며 시작한다. 원문의 유령은 ‘공산주의’라면 이무권 시인이 말하는 유령은 ‘성인지감수성’ 또는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글의 서문부터 가리키고 있는 방향성이 매우 뚜렷하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한반도의 남녘 땅을 떠돌고 있다. 유명 정치인, 연예인, 시인, 고위 공직자들이 이 유령이 재단하는 성인지감수성 잣대의 먹이가 되었고, 엊그제 실시한 총선에서도 정적을 향한 선봉장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무권 시인의 글 중에서.)

그는 이어 ‘쓰는 자의 자유’를 말하며 성다영 시인의 ‘좋은 시’를 반박한다. 성다영 시인은 올 초 감태준 시인이 발행인으로 있는 “시와 함께”의 청탁을 받고 감태준 씨의 성 추문에 관한 기사 내용을 재조합한 시를 공개 발표했다. (관련 링크)

이무권 시인은 감태준 씨의 성추행 건은 “공중파에 방송되고 각종 종합 일간지에서도 다루어졌던 사건의 재론인 만큼 구태여 알 권리를 위해 세상에 알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나아가 본문과 각주를 통해 “명예훼손은 물론 업무방해 고의”라고 주장하며 “범죄행위의 의도”로 확장한다. 이어진 본문에는 피해자들의 진술과 정황을 상세히 나열하며 “조작의 혐의”를 언급해 2차 가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학선 여름호에 수록된 이무권 시인의 글 [사진 = 김규용 기자]

또한, 꾸준한 위계 논쟁이 이어져 온 문예지 발간 과정에 관련해서도 독자가 아닌 ‘제삼자’가 논의할 게 아니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무권 시인은 “정의라는 이름 뒤에 숨은 복수와 시기의 실체”를 이야기하며 감태준 씨의 문예지 발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꼬아 말한다.

문학잡지를 만드는 일은 성사(聖事)가 아니다. 일군의 수요자 앞에 내놓은 상품을 만드는 장인일 뿐이다. 설혹 그 일이 문단 권력을 형성하는 행태의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어디까지나 그 잡지의 소비자들이 선택할 일이지 제3자의 처지에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중략) 염려하는 일이, 문학 잡지를 만드는 장은 성추행 위험성이 많은 곳이므로 그런 혐의를 받은 자는 잡지를 만들 수 없다는 일반론이 가능하다면, 나부터라도 문학 잡지의 모든 편집인들에게는 성범죄 예방 전자 팔찌라도 채우자고 시민운동이라도 전개하였을 법하다. 물론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 지금의 자리는 어느 정신병원 요양원의 외진 병실이겠지만. (이무권 시인의 글 중에서.)

인용된 구절에서는 ‘문예지 발간 과정에 성추행의 위험성이 많지 않으므로 관련한 혐의가 있더라도 잡지를 만들 수 있다.’는 논조로 기술한다. 하지만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문예지를 창간하고 청탁을 주는 행위는 문학 권력과 맞닿은 부분이다. 이는 같은 업계에서 가해자의 이름을 꾸준히 마주치고 그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는 피해자에게 2차, 3차 가해로 작용할 수 있다. 

특별기고문을 받게 된 경위를 묻는 뉴스페이퍼의 질문에 문학선 홍신선 발행인 겸 편집인은 “전영규 평론가 글에 대해 감태준 씨가 자신이 관련된 내용이 ‘곡해됐다’라고 강력히 주장했고 이에 지면의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한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2차 가해 및 윤리적 문제에 관해 그는 “문학선에서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문학선’은 기고문의 세부 내용에 대한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희숙 주간은 “사전회의를 거쳤다. 문학선은 잡지일 뿐이다. 어떤 글이 들어와도 실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윤리적 판단을 내릴 이유는 없다. 독자가 판단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우희숙 주간은 이어 “추가적인 논의나 전쟁은 장외에서 하길 바란다. 문학선에서는 다만 반론권을 제공했다. 책임은 그분께 있다.”는 말과 함께 “문학선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했다. 답변 어디에서도 본문에 지시된 작가 또는 피해자에 대한 염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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