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널리즘 = 최선영 에디터] 2016년,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로 우리의 지친 하루를 쓰다듬어주던 앤이 조금 더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앤의 어린 시절을 다룬 만화 <안녕, 앤>과 백영옥의 에세이가 만난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초록지붕의 집으로 가기 전까지의 앤의 인생을 보여준다. 총 5개의 장, 30편의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은 어린 앤이 우리에게 건네는 웃음과 위로 그리고 삶의 용기가 가득 담겨 있다. 태어나자마자 유행병으로 부모님을 여읜 앤은 가정부였던 조애너 아주머니의 집에서 고된 집안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암울한 일상에서도 친구들을 만들고, 지하 창고에 몰래 내려가 책을 읽던 앤의 모습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헤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을 붙이고 마음을 열었던 엘리사 언니, 버트 아저씨, 민튼 할머니와 이별해야만 하는 앤의 삶은 아이의 것이라기엔 가혹하다. 그런 앤을 ‘상습 이별자’(193쪽)라 칭하는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다.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게 하는 삶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수많은 이별을 떠올리게 되니. 하지만 앤은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만 같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6쪽)

그리고 백영옥은 이별을 겪는 앤의 뒤에서 그 작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그렇게 차분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는 결국 앤의 인생이 축소한 우리의 이별 가득한 여정이 아닐까. 이별의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기쁨, 뜻밖의 희망, 그리고 뜻밖의 사랑까지. 우리를 살게 하는 행복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미래의 어떤 날이 아닌, 오늘을 살게 하는 이런 뜻밖의 보물들이다. 언제나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가는 앤을 보자. 우리는 언제나 기쁠 수 없다. 기쁨이 가득한 인생이란 것도 없다. 살면서 기쁨은 귀해지고 기쁨을 알아보는 눈도 흐려진다. ‘고집스러운 기쁨’(23쪽)을 찾아보는, 삶을 대하는 앤의 태도에 백영옥은 이렇게 말한다. ‘희망의 종류를 바꾸는 용기’(23쪽)라고. 그 용기야말로 삶의 다양한 기쁨을 열어주는 눈이며 마음이다.

이렇다 할 보호자도 없는 앤이 씩씩하게 어린 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막연한 미래의 희망이 아닌 오늘 찾을 수 있는 기쁨이었다. 넘어지며 발견한 들꽃, 고된 노동 중에 발견한 활짝 핀 벚꽃 같은 것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며, 소중한 이를 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오로지 지금’(38쪽)뿐임을 잊지 말자. 미처 보지 못한, 주위에 떨어진 작은 행복을 줍다보면, ‘행복과 불행 사이에 ‘다행’도 있다는 사실’(57쪽)을 알아차릴 것이다.

물론 이별이 가득한 삶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외로움과 고독감이 엄습할 때마다, 끝인 줄 알았던 이별을 또다시 직면할 때마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잃곤 한다. 어린 앤도 마찬가지다. 앤은 조애너 아주머니의 집에서 고된 노동을 하느라 친구를 갖지 못했다. 외로운 앤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캐시 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로 삼는다. 백영옥은 이 상상력이야말로 상처를 이겨내는 ‘마음의 근육’(80쪽)이라 말한다. 수많은 작은 상처들이 만들어낸 강한 마음 말이다. 이 작지만 힘찬 상상력들이야말로 내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쁨이 되지 않는가. 행복이란 즐거움의 상태가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임을 아는 태도, 좋아할 이유를 찾는 습관이 앤을 우리의 앤으로 만든 소중한 힘이다. 그러니 앤의 손을 잡고 걸어보자. 상습 이별자가 말해주는 작지만 벅찬 진실들을 사랑해보자. 도무지 ‘안녕’할 수 없는 우리의 지금을, 오늘을, 삶을 사랑하는 첫걸음을 떼어보자. 그리고 책장을 덮었을 때 우리 역시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 작았던 시절의 나, 나는 분명 잘 해낼 거야.”(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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