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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의 형이상학과 TMI 사이 - 『알코올과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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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의 형이상학과 TMI 사이 - 『알코올과 작가들』
  • 정고요 에디터
  • 승인 2020.07.06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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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저널리즘 = 정고요 에디터] 술과 커피 같은 논란의 기호식품과 작가를 엮은 주제는 대중의 관심을 어렵지 않게 끈다. 커피와 작가라는 주제에 이끌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흥미롭게 읽은 이력을 지닌 나 같은 독자는 비슷한 호기심과 흥미에 이끌려 『알코올과 작가들』을 펼쳤다. 나는 술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지만 술에 의지해 글을 써 본 적은 없다. 술은 한없이 약한 나의 뇌를 너무 이완시킬 뿐이다. 술이 열어젖히는 물렁물렁한 세계에서 나는 어쩐지 퇴고조차 할 수 없지만 문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세계에서 독서를 하는 것만은 좋아한다. 비록 절주 중이라 한 잔의 술과 함께라면 더없이 유쾌했을 이 책을 읽는 기쁨은 놓쳤지만 말이다. 

『알코올과 작가들』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한 종류의 술을 충실히 담는다. 와인, 맥주, 위스키, 진,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테킬라, 럼 순으로 술의 기원과 역사, 양조 과정을 설명하며 관련된 작가, 문학 작품,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식이다. 각각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 겸 그래픽 디자이너인 두 저자 덕분에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러스트는 수준 높고 풍성하다. 독자는 8가지 종류의 술을 유람하며 작가가 즐겨 마신 술의 종류에 따라 작가를 분류하는 색다른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잡주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거의 모든 장에 등장하지만……). 말하자면 술에 대한 지식을 읽으며 전문적인 정보를 챙기고 술과 작가를 엮은 에피소드를 읽으며 소소한 TMI(Too Much Information)가 안겨주는 재미를 느낄 책이다.

TMI라는 말을 꺼냈으니 말인데, 예를 들어 제인 오스틴이 맥주를 즐겼을 뿐 아니라 양조하기도 했다는 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 센터에서 추정하는(정확한 양조법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제인 오스틴의 전나무 맥주 같은 레시피를 얻을 수도 있다. 제인 오스틴의 맥주 레시피 뿐인가, 트루먼 카포티가 좋아한 스크루드라이버 레시피, 레이먼드 챈들러 하면 떠오르는 김렛 레시피, 윌리엄 포크너가 애정한 민트 줄렙의 레시피라든가 헤밍웨이의 해장술이었다는 블러드 메리의 레시피를 맞춤한 일러스트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술을 좋아했지만 터무니없이 술에 약했다는 사실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의 원제가 ‘술꾼들’이었다는 사실도, 레이먼드 카버는 보드카 파였다는 사실도…… 술과 작가에 관한 TMI라 할 수 있을 테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이제 와인 하면 셰익스피어를 떠올릴 것이며, 진 하면 피츠제럴드를, 보드카 하면 레이먼드 카버를, 압생트 하면 랭보와 베를렌을, 테킬라 하면 비트 세대를 자동으로 떠올릴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들의 말을 빌려 ‘엄청나게 멍청한 것을 동반하는 술’과 ‘위대한 문학’을 둘러싼 지식과 TMI의 향연인 것이다. 

술이 소재이자 주제인 만큼 씁쓸함을 피할 수 없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에필로그에 쓴 저자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을 마시는 삶과 글을 쓰는 삶의 교차점은 지금보다 더 단순했던 시대의 결과”이며 “고립되어 오랫동안 작업에 몰두했던 과거의 작가들에게 술은 뮤즈일 뿐 아니라 외로움, 우울함, 불안,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소설 속 인물처럼 음주 문제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레이먼드 카버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물론 음주에 따르는 신화가 있죠.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음주 자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 자신이나 저의 글, 그리고 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제가 가장 바랐던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나서 그렇게 심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레이먼드 카버의 솔직한 진술과 책에 인용된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속 “현실의 삶이 사라지면 사람은 반드시 환상을 만들어낸다.”와 같은 대사를 읽을 때면 나 같은 독자는 현실을 잊고 싶어 술을 들이부었던 과거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술을 통해 대문호의 인간적인 허술함을 느껴보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헤밍웨이가 포크너에 대해 “책을 보면 그 친구가 언제 처음 술을 마셨는지 바로 알 수 있죠.”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쿡쿡,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절주의 기간이 끝나면 숱한 문인에게 초록빛 뮤즈가 되어 준 압생트를 꼭 마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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