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널리즘 = 알량한(필명) 에디터] 일본에서는 관방장관이 정부 대변인 역할로 하루 두 번씩 정례회견을 갖는다. 정례회견의 마지막 순서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빠르면 5분이면 끝나는 이 형식적인 자리에서 장장 37분 동안 23가지의 질문을 쏟아낸 기자가 나타난다. 매스컴을 통해 이를 접한 일본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가 바로 아베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 도쿄신문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신문기자』가 번역·출간되었다. 책과 동명의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는(한국 배우 심은경 주연) 올해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작품상, 우수 남우주연상, 우수 여우주연상 등 주요부문을 휩쓸었다.
저자가 가진 대단한 유명세와 일화들 덕분에 독자들은 그녀의 비범함을 기대하며 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비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맞벌이 부모의 2남1녀 중 차녀로 태어난 저자는 배우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다. 저널리스트의 꿈을 갖고 대학에 진학하긴 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쩔쩔 매고, ‘취직빙하기’를 피해 호주로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전국구 대형 신문사에서부터, 방송국까지 모두 취업에 실패하고, 지방 신문사에 속하는 도쿄신문에 어렵사리 입사한다.
저자는 본인의 말대로, 사회파를 자처하는 것도 아니고, 자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다.(10쪽) 심지어 그녀는 정부 비판의식이 투철한 편도 아니었다. 보수성향의 요미우리신문으로 이직하려던 그녀는 학생운동 출신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며 뒤늦게 언론사의 정치 성향을 의식한다. 그녀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
정의를 지키는 영웅이라는 수식어도, 반反권력 기자라는 꼬리표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기자로서는 병아리 시절부터 보고 배운 것들을 했을 뿐이고, 개인적으로는 감정이입을 잘하고 목소리가 큰 덜렁이에 가깝다. (10쪽)
그녀의 비범함은 사실 배운 대로 행하는 우직함에서 나온다.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그녀는 신입시절부터 지금까지 선배들이 가르쳐준 기자정신을 충실히 따르는 성실한 직업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회에는 공개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른, 눈치껏 배워야 하는 비공식적인 지식이 많다. 그것은 일하는 요령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순한 꼼수, 편법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다 비공식적인 교육이 공식적인 것을 압도해 버릴 때, 그 사회는 상식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정례회견에서 질문을 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질문을 했을 뿐인데 튀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현(現) 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는 질문 공세 때문에 궁지에 몰리자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답하고 만다. “(…) 여기는 질문에 대답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19쪽)
저자가 파헤친 아베 정권의 비리에 교육계가 특정돼 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유지를 헐값에 넘긴 모리모토 학원 스캔들, 총리의 영향력으로 대학의 학과가 신설된 가케 학원 문제) 그것은 아베 정권이 교육의 제기능을 막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고압적인 분위기는 그런 비상식의 한 단면이었을 뿐이다.
저자의 비범함은 상식에 근거한다. 한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미덕이던 이웃나라는 비상식이 판을 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좀 더 배운 대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