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호객 행위도 없었다 
자진하여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 길을 잃었다 

-「그곳의 그것」부분 

[뉴스저널리즘 = 유수진 에디터, 시인] 『피로 사회Müdigkeitsgesellshaft』를 쓴 한병철 교수는 오늘날의 사회를 ‘성과사회’라고 규정한다. 성과사회는 개인을 격려하고 독려하는데 힘을 쓴다. 언뜻 보기에 그 사회는 꽤 살맛나는 세상인 듯하지만, 그 궁극의 목표엔 성과가 도착한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다니까, 라고 말하지만 산다는 건 녹녹치가 않아서 반걸음쯤, 반의 반 걸음쯤 늦게 도착하고 마니, 그것은 또 도착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성과사회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전학생의 심정으로’ ‘나는 자주 나의 모든 것이 낯설다’.(「아주 이따금 쓰는 일기」)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곳에 조금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는 걸 깨닫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2006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데뷔한 이진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엔 성과사회의 화자가 자주 보인다. 양쪽으로 밀어 둔 문이 중앙을 향하여 닫히고 있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너도 할 수 있다고, 그러니 어서 힘을 내라고, 팔과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는 사회에 시인은 산다. 이진희 시인의 시적 대상은 ‘개’로 나타나기도 하고 ‘옥미’가 되기도 한다. 개는 ‘복부가 전부 으깨진’(「그 개」)  채 방치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목격된다. 옥미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야간대학을 휴학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화재 사고를 당한다. 이진희 시인도 같은 이유로 같은 시간에 보습 학원에서 일을 했지만, 한참이 지난 후에야 옥미의 죽음을 알았다고 쓰고 있다. 이진희 시인은 ‘너는 여태 나인 것 같고, 모든 우리인 것만 같’(「옥미에게」)다고 고백한다.

나는 부서지기 쉬운 불멸의 거울 
소중한 보석으로 다뤄줘 
언제 무슨 일을 저질렀든 나를 달래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를 받아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노래를 불러줘 
꿈속에서도 들릴 만큼 재생해줘 

-「페이크」 부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것은 명백하다. ‘네가 겪은 지난여름과 내가 간직한 지난여름’(「지난여름」)의 색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주어진 하루는 그 자체가 행운이며 행복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우선 ‘새로 시작된 끝이 꽃 피어 열매 맺고 달콤하고 탐스럽게 익어’(「끝과 시작」)갈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너는, 나는,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늦었으니 어서 힘을 내라고 재촉하기보다 서로와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보석인지를 자꾸 말해 주다 보면, 꿈속에도 노래는 재생되고 마침내 노래가 꿈밖으로 출현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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