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널리즘 = 박해민 에디터] 「달과 빨간 저고리를 입은 마술사」는 10명의 인도네시아 작가가 쓴 단편 22편을 모은 책이다. 압도적으로 황홀한 독서경험이었다. 식민경험, 반독재 운동, 공산주의 쿠데타 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한국의 역사·문학과 비추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삶과 죽음, 도덕과 윤리, 복수, 사랑, 상실, 슬픔, 소수자 문제 등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바다처럼 깊고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 두 특징이 촘촘하게 얽혀있었다. 350여 페이지의 제법 두꺼운 책이었지만 단숨에 읽었고, 만족했다.

하지만 이내 의심이 솟구쳤다. 나의 감동과 몰입이 순수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도네시아 문학을 ‘새롭게’ 느꼈다. 그리고 그 새로움에서 ‘순수한’ 희열을 맛봤다. 내 의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이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작가의 작품집이었어도 내 반응이 똑같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재미의 수준이야 비슷했겠지만, ‘아직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이렇게 많다니!’하며 쫓기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이는 서구문학이 향유의 대상인 동시에 교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서구문학을 읽을 때는 교양 없는 사람이기 싫다는 지적 허영 혹은 지적 열등감이 늘 따라다닌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문학은 그렇지 않다. 인도네시아 문학은 향유의 대상이긴 하지만 교양의 대상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고전’을 읽는다는 압박감이 없었다. 편안한 독서 뒤에 식민주의의 권력관계가 도사리고 있던 셈이다. 이 책으로 ‘문학 영토’를 확장했다는 나의 만족감은 낯선 땅을 발견한 식민주의자의 희열을 닮아 있었다. 

식민시대를 다루는 한국문학을 읽을 때는 ‘식민주의자의 시선’이라는 함정을 손쉽게 벗어날 수 있다. 피지배 민족이라는 ‘생득적’ 정체성이 알리바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알리바이는 이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안전한 정체성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윤리감각이 마비된 더없이 순진한 독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의 가능성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화살이 되어 돌아온 알리바이는 서구문학을 모른다는 수치심과는 다른 종류의 수치심, 즉 식민주의자의 수치심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 수치심은 제국주의의 부산물이지만, 두 번째 수치심은 세계문학의 권력지형을 재구성하는 자원이다. 첫 번째 수치심은 ‘뒤쳐졌다’는 열등감을 낳지만, 두 번째 수치심은 나의, 우리의, 세계의 윤리를 확장한다.

어떤 언어로 쓰인 문학이든 다채롭고 아름다우며 지겹도록 슬플 것이다. 인도네시아 문학이 특별히 아름답고 환상적일 리는 없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열렬히 예찬하고자 하는 마음을 최대한 절제한 채 이 글을 썼다. 식민지 인도네시아의 저항, 좌절, 사랑, 가난, 웃음, 복수, 생명, 슬픔, 무기력, 분노를 온전히 마주할 때에만 낯선 문학을 읽는 기쁨이 순수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음에 불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불만을 제쳐두는 순간, 우리는 식민주의의 능숙한 교활함에 굴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책에 소개 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벤 소힙과 쪽 사위뜨리는 경쾌하고 유쾌한 문체로 삶과 죽음, 도덕의 문제를 다룬다. 익사까 바누는 식민지 여성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작품 곳곳에 로맨스에 한정되지 않는 낭만이 묻어 있다. 모나 실피아나는 시대의 아픔을 덤덤히 풀어 놓는다. 그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설정한 소설의 구도가 특히 인상 깊었다. 젠 하에는 복수와 신비주의 테마를 결합하여 독특한 우화를 창조해냈다. 그의 작품에는 강렬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상징이 가득하다. 

아 에스 락사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역사의 상처를 구수한 옛날이야기 속에 펼쳐 놓았다. 작품의 평온한 분위기는 비극적 슬픔을 폭발시키는 증폭제 역할을 한다. 린다 크리스딴띠는 인도네시아의 공산주의 쿠데타, 반독재 투쟁이 남긴 딜레마와 윤리, 상처의 문제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보듬는다. 책을 읽으며 작품 속 주인공처럼 무너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유시 아피안또 빠레아놈은 익살맞은 상황설정으로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인딴 빠라마디타는 서사를 박탈당한 존재에게 강렬한 서사를 부여한다. ‘부정한’ 여자, 난민이 그 대상이다. 그의 작품에는 통쾌함과 근원적 슬픔이 공존한다. 클라라 응은 환산적인 상상력과 압도적인 솜씨로 사랑‧상실‧슬픔을 형상화했다. 그의 이야기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당연하게도, 위의 짧고 서투른 문장은 10명의 작가와 22편의 작품이 품은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다만, 이 글이 누군가 「달과 빨간 저고리를 입은 마술사」를 펼치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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