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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에 걸린 시절, 그리고 목소리 - 안재성의 『달뜨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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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에 걸린 시절, 그리고 목소리 - 안재성의 『달뜨기 마을』
  • 최선영 에디터
  • 승인 2020.06.04 0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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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저널리즘 = 최선영 에디터] 기억하는 목소리의 힘은 강하다. 우리는 그것을 증언이라고도 말한다.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에서 말하기, 이 시차는 언제나 증언을 예술로 만든다. 시차 속에서 켜켜이 쌓인 사유 속에서 우리는 객관적인 사료가 말해주지 않는 어떤 목소리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육성의 재현은 증언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형식이다. 육성은 ‘있었음’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말한다는 것’의 의미를 실감 나게 드러내 준다. 그렇다면 안재성의 새 소설집 『달뜨기 마을』은 어떠한가. 안재성은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등장한 후 노동 운동과 민초의 역사를 문학을 통해 쉼 없이 밝혀왔다. 그런 그의 이번 소설집은 ‘전태일 50주기 기념’이라는 말에 걸맞게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의 민초들의 삶과 투쟁을 담은 9개의 단편을 담았다. 작가 스스로 ‘대부분 본인이나 유족의 직접증언을 토대로 썼다’고 밝힐 만큼, 우리는 『달뜨기 마을』에 증언문학의 육성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달뜨기 마을』의 3부 구성은 시간의 순서를 따른다. 1부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2부는 5.18 광주항쟁으로 대표되는 군사독재 시절을, 3부는 20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끝나지 않는 노동 운동의 현장을 다룬다. 이 9편의 육성이 들려주는 개인의 역사는 거시 역사를 거꾸로 증언한다.

‘마술에 걸린 것 같은 시절’(11)인 한국 근현대사의 말도 못할 좌우익의 싸움과 그에 휘말린 민초들의 삶을 소상하게 되짚는 소설 「이천의 모스크바」를 보라. 화자는 경기도의 작은 마을에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좌익이 되었다가, 우익이 되었다가, 천주교도가 되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게 바로 민초들인 거라’(35)라고 덤덤하게 평한다. 거시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무력함과 삶의 아이러니를 적확하게 짚어내는 부분이다. 그것은 반세기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은 죽은 이의 숫자이기도 하며(‘보도연맹으로 죽은 3명, 이천경찰서에서 죽은 10명,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끌고 간 천주교인 2명, 인민군이나 국군으로 갔다가 죽은 10명…60가구에서 25명이나 죽다니 끔찍한 일이지’(31-32)), 「첫사랑 순희를 찾아서」의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의 이름이기도 하다(‘순희를 잊은 건 아니었어요…언젠가 세상이 좋아지면, 민주주의가 이뤄지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뿐이었지요’(113)). 살아남아 기억하고, 기억하여 말하는 것. 그것은 영웅도 지사가 아닌 민중들이 역사를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편 『달뜨기 마을』은 지금까지 증언문학에서 비교적 조명이 덜 되었던 여성인물들의 육성에 집중한다. 노동자로서의 소외가 여성주체의 소외와 융합되리란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그 고된 시간을 ‘즐거움’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1930년대 가혹한 섬유공장의 노동을 그래도 일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49)고 회상하는 「두발 자전거」의 목소리는 분명 노동시장에서 애초에 소외되었던 여성의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을 목도하는 순간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펜데믹의 날」 역시 그렇다. ‘광주가 천지사방 펜데믹의 바다였던 오월의 그 열흘’(136)간 항쟁에 나선 여성 공장 노동자들은 도청 광장에 모여든 2만 여명을 먹이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먹밥을 만들고 국을 퍼 날랐’(154)다. 즐기는 것, 그리고 먹이는 것. 그것이 그 시대 여성들이 쟁의에 참여하는 방법인 동시에 ‘노동운동은 그 자체로 즐거움’(142)이라 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조금 더 시간을 끌어당겨, 2000년대 여성 노동을 비추는 「캐디라 불러주세요」를 보자. 수십 년을 캐디로 일한 화자는, ‘내 생에 가장 빛난 순간’(305)을 부당하고 비열한 골프클럽에 노동쟁의로 대항한 끝에 얻은 수인번호 111번을 달게 된 순간이었다고 재차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부여한 번호 앞에서 그녀는 당당하다. 변호사가 아니라 동지라고 불러달라는 변호사의 말에 ‘어찌나 귀여운지 감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웃었’(307)다는 그녀의 웃음은 공장의 웃음인 동시에 광주의 웃음이기도 하다.

안재성의 소설집 『달뜨기 마을』은 이처럼 한국 사회의 격변기 100년을 버티고, 생존한 민초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틈새에 숨은 삶의 아이러니와 웃음을 기억하는 이 소설집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술에 걸린 것 같은 시절’은 언제나 새로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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