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겟=김기준 에디터, 시인]독자들은 시가 점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시가 난해하거나, 독자들이 ‘시인의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막연한 언어의 나열로 추상적인 관념을 불러오려고 한다면 시는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 또 시인의 사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성을 구체적으로 (시인이)표현하거나 (독자가)이해하는 일도 버겁다.

난해한 작품이든 형이상학적 사유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든 시의 본질은 서정에서 출발한다. 서정은 지성과 이성을 움직여 궁극적으로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가 서정에 의존하는 문학 장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줄곧 삶의 현장을 토대로 시를 써온 이은봉 시인의 시집 ‘생활’(실천문학사 刊)은 서정의 가치를 보여준 그의 이전 시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평범한 삶에서 공통의 진리와 진실을 좀 더 깊게 찾아내고 정의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언제나 종종대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갈대꽃,/그녀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기까지는/한참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산벚꽃 흐드러지게 피어 발걸음 어지럽다/자전거를 타고 또다시 나주호 한 바퀴 달려본다//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외로움 덩어리들/고개 갸웃대며 내 마음 천천히 들여다본다.//<‘나주호 한 바퀴’ 부분>
 
삶의 현장에 속하는 나주호를 돌아보는 일상에서 시인은 사유한다.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한 번 더 생활 속에 뛰어들면서 비로소 외로움을 발견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성찰하는 인간 내면의 깊이를 엿보게 한다.

멀리 풍장 치는 소리 들린다/팔월도 한가위/산마을 아득한 골짜기 저쪽//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어린아이 둘......//젊은 엄마를 따라/묏등 앞 오가며 상을 차린다//조촐한 가족, 두 번 절하고//음식 나누는 동안/산까치, 참나무 끝에 날아와 운다//<‘조촐한 가족’ 전문>

시집 속의 시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지만, 젊은 엄마와 두 아이의 슬픔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 긴 여운을 남긴 시여서 눈에 띈다. 시인이 바라본 세상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그대로 배어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은봉 시인은 서정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인’이라고 해설을 쓴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밝히고 있다. “서정시의 본령을 잃지 않으면서도 목가적이거나 감상적인 낡은 서정에 함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서정을 확대해 그것이 보여주는 첨단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줘 왔으며, 이번 시집의 성과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조재훈 시인은 표4를 쓰면서 “이은봉 시인의 삶을 보는 변치 않는 시각은 낙천성에 있다. 아무리 어둡고 막혀 있어도 즐겁게 출구를 찾아낸다. 시편의 거개가 따뜻한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이은봉 시인은 1984년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창작과비평)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첫눈 아침’ ‘걸레옷을 입은 구름’ ‘봄바람, 은여우’를 펴냈고, ‘실사구시의 시학’ 등 다수의 평론집과 시조집, 시론집 등을 발간했다.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가톨릭문학상, 시와시학상, 송수권문학상, 질마재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인 ‘생활’을 비롯해 모두 62편의 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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