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사이. 그러나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사이. 육체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밥도 같이 먹고,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겠거니 넘겨줄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가 일본의 중심지, 도쿄에 있는 셰어하우스 ‘티라미수 하우스’에 존재한다. <애매한 사이>는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

후카자와 우시오 작가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으며,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다룬 연작 단편집으로 <애매한 사이>를 출판했다. 여섯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6개 챕터로 구성된 소설은 점차 ‘티라미수 하우스’라는 공간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제일 처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방문한 이쓰키는 잠시 머물기 위해 왔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티라미수 하우스가 아니면 갈 곳 없는 사람들, 처음으로 ‘관계’라는 것을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무언가 결핍된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따뜻한 드라마를 그리지는 않는다.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기에는 각자가 살아온,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각박하다. 차가운 삶을 견뎌내며 불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타인을 사랑하고 돌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옮긴이는 “가난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서로 돕기는커녕 반목하게 한다. 남보다 못한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은, 언제 금 밖으로 밀려날지 몰라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고 말하며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지 아무쪼록 귀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부탁한다. 

작은 지구, 티라미수 하우스

사람들이 지구에 모여 사는 것처럼, 좁디 좁은 티라미수 하우스에 여섯 명이 모여 산다. 셰어하우스를 보러 온 손님이 말한 것처럼 한 공간 안에 살면 “여기 살면 서로서로 도움도 주고 그러겠죠?”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셰어하우스 안에서 인간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며 ‘지정된 자기 공간에서 숨 죽이고 살고 있다’. 

 

다채로운 시선을 담은 시트콤

얼마 전부터 셰어하우스 주변을 떠도는 남자가 나타난다. 등장 인물들은 각자 미지의 정체를 자신이 그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일 것이라 짐작하며 외부에 대한 불안과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6개의 챕터를 통해 시점을 옮겨가며 반복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냄으로써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이외에 인물들이 받은 상처는 사회가 개인의 빈곤과 불행에 어떤 시선을 보내는지를 담아낸다. 

이용가치가 없어져 애인에게 버려진 이쓰키,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봐 불안한 배우 후카, 위압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기초수급자 사쿠라, 기능실습생 제도로 일본에 온 중국인 왕 웨이, 가스라이팅과 폭행을 당하고 아들까지 잃은 요시미, 어렸을 때부터 돌봄을 받지 못한 히나를 보며 ‘어떻게 모두가 불행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요리를 하며 “즐거워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관계와 경험이 우릴 살게 한다. 착취하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도, 슬픔을 바라봐줄 사람도, 그런 풍경도 이 작품에 등장하고 우리 삶에 존재한다. 그런 “가난하지만 도움을 주는” “선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드는 삶의 모양을 덤덤히 바라보며 어떤 ‘사이’를 만들어내는지 둘러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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