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안 신었음.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박금산의 소설집 「소설의 순간들」은 헤밍웨이의 전설적인 플래시픽션으로 시작한다. 헤밍웨이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책에 담긴 소설들이 굉장히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가 ‘헤밍웨이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친구들과 내기를 벌여 판돈을 쓸어갔듯이, 저자는 독자가 이 책을 구매한 후 “기분 좋게 판돈을 털리는 느낌”(7)을 받길 원했다. 

책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굉장히 짧다. 분량만 짧은 것이 아니다. 문장도 짧다. 이는 빠른 호흡으로 이어져 긴장감과 속도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도래하는 몰입과 정지, 기이함의 순간.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에 응축되어 있던 것들이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터져 나온다. 이 응축과 폭발의 순간이야말로 작가가 극한의 압축으로 노린 것이었을 테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 책이 ‘판돈’을 걸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했다. 

<어떤 개의 쓸모>와 <개와 상사>를 보자. 야뇨증으로 이불에 오줌을 싸는 남자는 매일 이불 빨래를 한다. 사정을 모르는 이웃이 이유를 묻자 그는 반려견 핑계를 댄다(<어떤 개의 쓸모>).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직장 상사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그는 매일 밤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사는 매일 이불을 빠는 그에게 결벽증이 있냐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며칠 뒤. 승강기에 공고문이 붙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으니 베란다에 이불을 너는 일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상사가 쓴 것이 분명한 그 공고문을 본 남자는 화가나 ‘퍽큐’를 날린다. 물론 주위를 살피고 CCTV를 등진 채로(<개와 상사>).  

이뿐이 아니다. 결혼을 앞둔 딸에게 멋쩍게 축의금 5만원을 건네는 스님 아버지(<결혼은 푸른 토마토>), 자기가 질투한 대상이 고양이였음을 알고 안도하는 여자(<코와 고양이>), 눈밭에서 아들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다 아들을 살해하고 유기한 아버지(<눈사람>), ‘누구나 혼자다’는 명제를 공유하는 커플의 희비극(<네가 미칠까 봐 겁나>) 등등. 

기이하고 우습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 독자의 마음에 기이한 잔상을 남기며 꽂힌다. 헤밍웨이가 여섯 단어로 독자에게 감동을 줬다면, 박금산은 25편의 플래시픽션으로 독자의 입꼬리를 들썩이게 한다.

 

‘헤밍웨이 되기’가 저자의 첫 번째 목표였다면, 그의 두 번째 목표는 독자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이 독자 내면의 창작욕을 자극시키길 바랐고, 이 책을 읽고 쓰기를 시작한 독자가 스토리 콘텐츠 공모전에 입상하길 바랐다. 저자는 이를 위해서 문예창작과 교수라는 자신의 직업을 책 곳곳에 녹여두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이름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다. 각 장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에 관한 저자의 짧은 소설론으로 시작하며, 그 소설론에 부합하는 소설이 뒤따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발단’을 읽은 독자는 발단에 대한 작가의 설명과 더불어 발단의 특징을 잘 구현한 5편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소설쓰기 참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참고서의 결론은 간단하다. 저자는 결국 중요한 것은 기본이라고 적는다. 기본을 갖추라는 조언은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 글을 쓰기 시작할 독자를 위한 격려인 동시에 언젠가는 슬럼프를 맞이할 저자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하다. '쓰는 사람‘으로 엮일 독자와 저자가 같은 교훈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는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함을 느꼈다.

기이하고 강렬한 플래시픽션 모음집과 기본을 강조하는 소설쓰기 참고서는 별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지만, 어쨌든 작가는 이 이상한 조합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책의 두 가지 특징 중 하나라도 호기심이 동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저작권자 © 뉴스저널리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