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cliché). 사전적 의미로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를 이르는 말을 뜻한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저자는 반복된다는 것만으로 클리셰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클리셰의 특징은 자기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 즉, 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클리셰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충분히 작가에게나 대중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나의 추측이나 기대에 딱 떨어졌을 때 오는 쾌감도 있으니까. 우린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라가며 놀아도 좋다.

“공포 영화는 뻔해. 살인마에게 쫓길 때 꼭 현관문이 아니라 2층으로 도망가.”
“주인공의 부모님들은 곧 죽을 거예요. 디즈니 영화니까요.”
“이번에도 영화 제목이 두 글자네?”
“왜 다 아는데, 주인공만 모를 수가 있지?”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는 SF 작가이자 영화 평론을 꾸준히 해온 듀나가 20년간 채집한 영화 속 클리셰에 관해 쓴 책이다. 20년 전에 쓴 글도 10년 전에 쓴 글도 촌스럽지 않은 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일까. 나도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고전 영화나 90년대, 2000년대 좋아했던, 혹은 흥미로웠던 영화를 종종 찾아보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했기에 저자는 ‘후일담’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글의 뒤에 지금의 생각을 덧붙였다.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클리셰 역시 변화한다. 새로운 표현이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다 보면 결국 클리셰가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너무 억지스러운 클리셰도 있고, 당연했던 클리셰가 현재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고,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책 속엔 수많은 영화가 등장한다. 종종 드라마와 문학작품이 등장해 설명을 곁들인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흐름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책이지만 그렇다고 영화 비평서처럼 무거운 책은 아니다. 책의 부제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처럼 간결하게 추려 썼기에 흥행 영화나 상업 영화 위주로만 봤던 사람도 재미있게 쉽게 읽히는 책이다. 다만 각 작품에 관한 설명은 없기에 친절한 책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때론 저자의 뼈 있는 유머와 자조 섞인 목소리와 채근하는 듯한 목소리도 들리지만, 저자의 생각을 당당히 써 내려간 글에 시원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 안에서 독자는 자기 생각과 견주기도 하고,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한 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를 읽으며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본 영화와 다시 볼 영화, 보고 싶은 영화를 체크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고 싶어 하는” 클리셰를 찾아내 내가 다시 상상의 스토리를 덧붙여보고 싶어졌다. “설명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라는 법”은 없고,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법도 없으니. 새로운 클리셰를 향하여 혹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클리셰를 찾아야지. 클리셰가 또 다른 창작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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