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형 변호사
이승형 변호사

 

상대방에 대한 최후통첩이자, 재판으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오죽하면 소송을 운운했을까 공감은 되지만, 대화 중에 법(法)을 끌어들이는 순간 서로의 감정은 더욱 격해지고, 실망감과 배신감, 오기, 증오 등 다양한 감정의 폭발로 인해 더 이상의 협상은 요원(遙遠)해진다.

법치국가에서의 판결(判決)은 당사자의 공방(攻防)을 토대로 한 판사의 직업적 양심, 객관적인 심리(審理)와 공정한 법 적용에 따른 정의로운 결과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판결문을 얻기 위한 과정이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는 장차 재판정(裁判廷)의 피고가 될 생각에 몹시 거북할 것이고, 정작 재판을 시작하려는 채권자도 막막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또한, 소송에는 적지 않은 기회비용이 뒤따른다. 원고든 피고든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치열한 공방 끝에 일단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승복하지 못한 자가 상소(上訴)를 하게 되면,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소송의 굴레에서 본의 아니게 긴 세월 전력투구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 본안사건의 항소율은 합의사건의 경우 40%, 단독사건의 경우 20%에 이르고, 상고율은 고등법원 판결사건의 경우에만 34%에 이른다고 하니, 소장을 접수하려면 소위 ‘삼세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항소와 상고를 거쳐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결코 끝이 아니다. 패소자는 억울함은 기본이요 판결 주문에 따라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가혹함이 뒤따르고,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설령 승소(勝訴)를 하더라도, 만족감은 차치하고 이미 지친 상태라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닐 경우가 많으며, 채무자의 임의이행이 안 될 경우에는 새로이 강제집행절차에 돌입해야만 하므로,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민사조정절차에 적합한 사건인지를 파악하여, 우선적으로 민사조정신청을 제안한다.

특히, 승소가 명백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상대방의 재산이 없어 추심여부가 불투명한 사건, 의뢰인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부족한 사건, 상대방과의 감정대립을 원하지 않거나 장래 거래관계의 유지를 필요로 하는 사건,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쟁점이 너무 난해하여 본안소송의 진행이 험난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 빠른 분쟁의 종식을 필요로 하는 사건 등의 경우에는 더욱 집요하게 조정신청을 권유한다. 

민사조정이란 제3자인 법원 소속의 조정기관이 간이한 절차에 따라 당사자를 설득하여 당사자 사이의 상호양해를 통하여 민사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사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고,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불복할 수 없다. 그래서, 민사조정은 신속한 분쟁해결에 적합한 절차이다.

민사조정의 신청은 서면(書面)이나 구술(口述)로 할 수 있어 간편하고, 인지대는 통상 소송제기시의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하며, 조정절차의 비용도 조정이 성립된 경우 특별한 합의가 없으면 당사자들이 각자 부담하게 되므로, 비용 때문에 주저할 이유도 없다. 

또한, 민사조정은 당사자의 이익과 사정을 고려한 다양한 결론의 도출이 가능하고, 당사자 상호간의 타협과 양보에 의해 분쟁을 해결하므로, 감정의 소모도 줄어들고 자진하여 합의를 이행하는 경우가 많아 강제집행의 부담이 적다.

부수적으로는, 판사의 심리(審理)와 판결문 작성 시간이 절약되므로, 사법경제에 부합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법원에서도 민사조정의 활성화를 위해 상임조정위원제도, 조기조정제도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소송이 계속 중인 사건 중에서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결정으로 조정에 회부하기도 한다.

“가장 나쁜 화해도 가장 좋은 판결보다 낫다”는 법언(法言)이 있듯이, 후유증이 큰 판결보다는 대화와 양보를 전제로 하는 민사조정제도가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방식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수 백 건의 분쟁을 조율한 경험이 있고, 실제로 많은 보람을 느낀바 있기 때문에, 민사조정제도의 탁월함을 이미 체감하고 있다. 

간혹 조정을 하다보면, ‘져도 좋으니, 끝까지 법대로 하겠다.’며 조정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민사조정 또한 법대로 하는 방식 중 하나이고, 일부 양보를 했다고 해서 결코 패소(敗訴)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정은 당사자의 의사에 따른 합의이므로, 누구도 조정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만일 조정안을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합의를 하지 않고 소송으로 이행하면 되므로,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소지도 딱히 없다.

명분(名分)보다는 실리(實利)를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있고, 어느 정도 이해와 양보의 아량을 갖추고 있다면, 소장의 제출에 앞서 민사조정제도를 고려해 봄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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