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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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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
  • 김규용 기자
  • 승인 2020.02.28 0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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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사진=네이버)

 

<머레이 쇼에 출연한 아서의 말>

난 잃을 게 없어요.

더 이상 속상할 일도 없고..

내인생 자체가 코미디다.

코미디는 주관적인 것이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시스템 속에 있는 당신들은 옳고 그름을 마치 뭐가 웃기고 안 웃긴 것 인지처럼  극단적으로 판단한다.

[뉴스저널리즘=김규용 기자]DC 코믹스(DC Comics) 만화를 중심으로 출판을 진행하는 회사이다. 그리고 워너 브라더스는 자회사로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들어 대 희트를 치고 있다. 슈퍼맨과 베트맨, 원더우먼 등 다양한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조커도 DC 코믹스의 캐릭터로 최근 영화 베트맨의 숙적인 조커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영화시장에서 조커를 재조명했다.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감독은 빌런(악당) 캐릭터의 성장과정을 그리며 자본주의 사회적 문제점을 제시했다. 구조적 모순 속에 상대적 약자가 악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조명하면서 많은 시스템의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투영시켰다.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는 이번 영화 ‘조커’로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 배우 조합상,영국 아카데미, 미국 아카데미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비단 이 영화를 통해 재조명된 배우는 아니다. 이미 칸영화제나 기타 굵직한 영화상에서 수상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메소드(method)적인 연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올려놓은 것은 틀림없다. 또한 호아킨의 연기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영화의 각색자가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극을 각색하며 캐릭터와 배우사이에 역할의 간극을 좁히는 것에 충실했던 것 같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영화음악이 주는 흡입력

시그니처 삽입곡이라 할 수 있는 원곡 Gary Glitter의 ‘Rock & Roll Part II’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는 Gary Glitter가 7-8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영국 가수이며 글램 록 장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 조커에서는 머레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집을 나서며 시작해서 포스터에 나오는 계단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는 장면에 삽입된 곡이다.

그리고 지미 듀란트(Jimmy Durante)의 스마일(Smile)이다. Smile though your heart is aching. Smile even though it's breaking. When there are clouds in the sky, you'll get by. If you smile through your fear and sorrow. Smile and maybe tomorrow. You'll see the sun come shining through for you(마음이 아파도 웃어요. 마음이 찢어져도 웃어요. 하늘엔 먹구름일지라도 잘 지낼 수 있어요. 두렵고 슬퍼도 웃어요. 웃으면 내일의 태양이 환하게 비쳐줄 거예요.) 이곡은 영화 내내 조커의 우울을 조명하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음악은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을 더 먹먹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조커의 캐릭터를 열심히 살려했고 암울한 구덩이에서 벗어나 보려는 안간힘을 쓰는 절규하는 인간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흡입력 있는 음악을 선정하고 많은 찬사를 받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것은 조커의 시그니쳐곡이라 볼 수 있는  Gary Glitter의 ‘Rock & Roll Part II’에 있다. 이 가수는 90년대 아동성범죄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아동포르노 사건으로 복역한 후 아동성매매와 베트남에서까지 아동성폭행으로 결국 또 복역한다. 그러면서 아동 성범죄자로 알려지며 사회적 지탄을 받은 가수이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2015년 아동성범죄로 16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에 복역 중이고 감옥에서도 인세수익을 받는다며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의 입장은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며 그리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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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절망감을 담은 암울한 고담시가 보이는 우리사회의 자화상

영화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를 통해 “미화원들의 파업이 18일째를 맞아 쓰레기가 가득차고 있는 심각한 도시의 환경”을 알리며 시작한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 무너짐으로서 도시가 그 기능을 잃어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비단 이것은 미화원들의 파업만은 아닐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전파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 거리 뒤편에서 시작된 빈민 계급의 반란이 오버랩 되고 있다. 조커가 머레이 쇼에서 던진 대사 “토마스 웨인이 나처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할까?”라는 대사는 부를 가진 기득권층과 이와 반대인 빈민층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아서가 시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부각되며 시작된 사회적 반란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비난하고 있다.

주인공 아서는 자신의 직분인 광대일에 충실하다. 광대분장으로 상점의 마케팅을 돕거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서의 직업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신이 오너가 아니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의 고용원인 것이다. 그래도 아서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광대분장을 정성스럽게 한다. 광대분장으로 상점의 마케팅을 돕기 위해 고용된 아서는 피켓을 열심히 흔들며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다. 이때 동네 어린 아이들에게 피켓을 빼앗긴다. 그리고 피켓을 찾으려 그들을 쫒는다. 아서의 추격전에선 아이들을 혼내주겠다는 의지가 전혀 안보인다. 다만 피켓을 찾기 위한 몸부림만 보인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쫓던 아서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매를 맞고 피켓은 골목에 널부러졌다. 아이들의 이러한 위험한 도발을 통해 감독은 사회적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무너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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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조커’ 아서 플렉

아서에게는 삶의 고통을 토해내듯 울음과 웃음사이에 구분이 가지 않는 헛웃음을 하는 병이 있다. 발병 기제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을 때 주로 발작한다.  이처럼 이 증상과 함께 아서가 담당 정신과의사에게 “미친 것은 나인가요? 세상이 미친것인가요?” 라는 질문을 한다.  아서가 상담자에게 던진 이 물음이 바로 영화의 핵심은 아니었을까. 아서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 최선을 다해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두거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서의 삶에서 한 조가리의 희망이나 삶의 의미 한줌을 발견하기 어려운 캐릭이다. 그런 상황에 자신이 케어해야 하는 몸이 성치 못한 어머니가 존재한다. 그러나 아서는 이러한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순수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서는 어머니와 삶을 연명하기 위해 하루벌어 살아가는 비참한 환경에 처해있다. 아서를 고용한 사장이 상점홍보에 사용했던 피켓의 비용 청구에 대한 소리를 듣는다. 어린 아이에게 당해야만 했던 불편한 진실을 넘어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말에 아무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로 그려졌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와 뒷골목 쓰레기을 발로 차며 화를 달래는 모습에서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아서는 고용주의 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사회적 루저(loser)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또 아서에게는 어린 시절 성장환경에 비밀이 있다. 아서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아동학대를 받았다. 이때 받은 충격이 아서에게 트라우마가 생겼고 치료과정을 통해 자기보호 기제이 기억을 잃게 만들었다. 또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망상증을 가진 환자다. 그리고 아서도 기억을 잃은 후 작은 충격과 놀람에 의해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충동장애를 앓고 있는 것. 이러한 아서의 캐릭터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과 처참한 삶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아서는 자신의 성장배경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서에게는 무엇보다 주변의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에게 손을 내밀거나 한 마디 위로조차 건네주지 않는다. 아서는 이에 대한 욕구를 망상을 통해 풀어가고 있다.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 분)은 TV에 유명한 머레이 쇼 진행자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아서와 어머니 페니는 머레이쇼의 애청한다. 아서가 머레이 쇼를 방청하는 망상을 한다. 그리고 머레이와 대화를 하며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웃으라고 말했어요. 내가 태어난 것은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서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감독은 삶의 최악의 조건인 아서를 통해 기득권층의 반성을 유도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빈민층과 기득권층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의 이기심은 빈민층이 가지는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철저히 왜면 한다. 그러나 선거나 자신의 이기를 위해서는 뭐든지 해 줄 듯한 거짓된 선심을 쓰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회 시스템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문제점을 강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반어적인 표현들

어머니 페니 플렉(프란시스 콘로이 분)은 거동이 불편한 망상증 환자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망상증환자인 것을 관객은 인지하지 못한다. 아들 아서와 페니는 머레이 쇼를 매일 본다. 뉴스시간에 토마스 웨인(브래트 켈렌 분)이 시장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때 어머니 페니는 “그는 좋은 시장이 될 거야.”라고 뜬금없는 말을 한다. 아서는 누가 그러더냐고 질문을 한다. 어머니 페니는 “뉴스에 나온 사람들이 다 그래. 그 사람만이 이 도시를 구할 수 있다고”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머니 페니는 “다 우리에게 빚진 덕분이지....”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아서는 스텐딩 코미디 극장에서 무대에 서고 있다. 그러나 관객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무대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서가 노트에 적은 글이다. “The worst part about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 have as if you don't.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들이 나를 정상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는 것이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주지하고 있듯 아서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자신은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시스템이 아서의 눈에는 오히려 정신이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자본주의적 사고의 모순점에 대해 많은 사유를 유도해 내고 있다. 

영화의 장면은 아서의 주치의 상담자와 마주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아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계속 얘기하지만 상담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다. 상담자에게는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이미 가득하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정부의 예산이 줄어 자신이 일하고 있는 무료 심리센터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그에 따른 실직과 자신의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 아서의 말을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아무 대꾸 없는 상담자를 아서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들은 당신과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다. 상담자의 이 말은 이기적 끝을 달려가는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적 요소

아서가 조커로 다시 태어날 것이 암시되는 장면은 영화가 35분을 지난 시점부터다. 물론 영화제목의 특성상 조커의 탄생은 예고되어 있었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는 어린아이에게조차 맞고 다니자 아서에게 호신용 권총을 반강제적으로 건네줬다. 아서는 처음 총을 한사코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총을 만지면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낀다. 사실 아서는 총을 소지하면 안 되는 정신질환자였다. 그리고 사건은 아서가 어린이 환자의 위문을 위해 아동병원에서 광대공연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이들과 공연하는 중간에 아서는 권총을 떨어뜨렸다.

자신도 놀라며 당황한 아서는 소품이라 둘러댄다. 하지만 아서가 총기소지하면 안 되는 사람임을 떠나 장소가 아동병원이라는 점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이에 화가 난 사장은 전화통화를 통해 아서를 끝내 해고한다.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해고통보에 절망한 아서는 지하철을 이용해 집으로 향한다. 지하철에는 금융가에서 일하는 남자 세 명이 술에 취해 있다. 그 앞에 한 명의 여인과 자신만이 지하철에 승객으로 있다. 이때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앞의 여인에게 추태를 부리고 있다. 여인은 아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도움을 요청하듯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때 당황한 아서는 다시 특유의 헛웃음이 발병한다. 취한 금융인들은 아서가 히죽대는 것으로 오해하고 아서에게 달려들어 집단 구타를 시작한다. 그러자 아서는 참다못해 가지고 있었던 권총으로 셋을 향해 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지하철이 역에 멈추자 한 명이 다리를 절며 도망한다. 아서가 추적하여 결국 그도 사살해 버린다. 사람을 죽였다는 두려움에 인근 화장실로 황급히 들어간다. 그러나 아서는 곧 안정을 되찾고 전에 맛보지 못했던 희열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 시작되는 무술인 듯 흐느적거림의 춤사위가 바로 아서가 조커로 변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아서는 자신을 구렁텅이로 넣은 사회시스템을 향해 드디어 복수를 하며 빌런 캐릭터로 변태한 것이다.  

지하철 살인으로 한껏 기분에 취한 아서는 같은 층에 사는 몇 번 마주친 소피 두몬드(재지 비츠 분)를 찾아간다. 소피는 어린 아들과 함께 둘이 아파트 같은 층 복도 끝과 끝에 살고 있다. 소피가 문을 열자 아서는 소피에게 달려들어 열정적인 키스를 한다. 그렇게 강렬한 모습으로 아서는 소피와 연인이 되었다. 이후 아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페니와 뉴스를 시청한다. 시장후보인 토마스 웨인이 지하철 살인마에 대해 겁쟁이라고 일축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아서는 오히려 즐거운 듯 웃음을 보인다. 아서에게 이제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기존 체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광대마스크를 쓰고 폭동을 일으킨다. 빌런적 캐릭터로 영웅 조커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서의 어머니 페니는 오지 않을 토마스 웨인(베트맨의 아버지)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페니는 아서가 토마스 웨인의 아들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래서 반드시 자신의 어려움을 도울 것이라며 웨인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놀란 아서는 토마스 웨인의 집을 찾아간다. 자신의 출생 비밀이 웨인이라는 막강한 사람의 아들이었다는 것에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찾아가 웨인의 집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이때 어린 부르스 웨인(미래의 베트맨)과 조우하며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형제애에 휩싸인다. 감독은 이 장면 외에도 곳곳에 관객을 혼란하게 만들고 다양한 반전을 만들며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 했다.

<상담자와 마지막 대화>

아서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상담자 : 무엇이 그렇게 웃긴가요?

아서 : 아뇨. 갑자기 조크(농담)가 생각나서요.

상담자 :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아서 : 아뇨. 어짜피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감독은 폭동이 한창인 바깥과는 대비적으로 극장에서 평온하게 영화를 보는 기득권층을 비추며 이들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과 장면 속에 좁혀지지 않는 사회적 간극을 말하며 그 결말에 대해 암시를 한다. 아서의 살인이 기득권층의 부도덕과 시민들의 불만적 상징이 되며 시민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 ‘조커’는 영화 속 집단행동을 통해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분노를 경고하고 있다. 또 아무리 좁히려 해도 좁힐 수 없는 태생적인 간극에 대해서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이러한 문제를 시스템적 요소로 본 것 같다.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발생하는 부자와 빈민, 기득권층과 피지배층 등의 간극이 끝내 좁혀질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감독은 이러한 간극을 좁힐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사회적 담론이 모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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