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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작가의 장편소설"다시, 스침들" 가장 낮은 자세로 타자의 얼굴에 말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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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작가의 장편소설"다시, 스침들" 가장 낮은 자세로 타자의 얼굴에 말을 걸고...
  • 김가경
  • 승인 2019.10.30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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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 교보문고)
(사진=인터넷 교보문고)

김연경의 작품『다시, 스침들』을 읽고 내가 처음 한 일은 은희정이란 인물을 찾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숱한 인물의 교차 속에서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와 비슷한 캐릭터인 정은희에게 시선이 쏠려 그녀를 놓쳤던 것이다. 등장인물 대개가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그녀가 머문 공간은 딱히 없었다. 그저 소제목을 할애 받은 다른 인물들 눈에 언뜻언뜻 비칠 뿐이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을 섭렵한다는 점, 얼굴이 모과처럼 울퉁불퉁 못생기고 덩치가 커다란 여자(159쪽)라는 단서 이외에 그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중성적인 느낌마저 드는 이러한 인물을 작가는 왜 등장시킨 것일까. 넋이 나간 것 같은 여자, 미친 것 같은 여자, 완전히 미친,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여자(26쪽) 정은희와 지능수준이 유사하다는 소설가 지망생 김건우의 제보를 근거로 그녀의 숨겨진 행적을 찾아 나섰다.

먼저 핵심 단서가 되는 공간은 카페 ‘모비딕’이다. ‘모비딕’의 주인 모비딕에게 인간은 커피를 마시는 인간이다. 고로 인간은 그가 마시는 커피의 종류에 따라 분류, 정리된다, 고(18쪽) 밝힌다. 성장과정에서 느낌 삶의 단편들을 다양한 커피로 이양시킨 그의 철학처럼 그곳에 드나드는 인물 대개가 자신만의 커피를 즐겨먹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찾는 자리는 허브가 자라는 구석 자리, 소설가 지망생 김건우는 그곳에 앉아 지지부진한 장편을 쓰고, 변동림은『죄와벌』을 패러디한 엽기적인 작품『라스콜니코프(들), 망치를 들다』를 번역한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정은희는 자신이 잉태한 생명을 고래라고 여기며, 인형눈알을 붙이고 받은 돈으로 커피를 사들고 그 자리를 찾는다.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이소율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그곳에 앉아 어머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며 며느리도 아닌, 혈연으로 묶인 모든 관계망을 끊고 오롯이 아무것도 아닌 한 인간이 되어 사색에 젖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서사를 이어갈 뿐 서로 엮여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다. 내레이션에 따라 그곳에서 다시, 스침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이 ‘모비딕’을 벗어나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할 때, 존재감 없으며 얼굴이 모과 같은 은희정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모비딕에 드나드는 인물은 아나그램 형태의 어떤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은희정과 정은희처럼 변동림과 김향안이, 김건우의 학구적이며 포르노그래피적인 옛 애인 송은경과 현재 연인 관계인 서정적인 유서정이, 모비딕의 사장이 김건우와. 『죄와 벌』과 이를 패러디한 엽기물『라스콜니크프(들), 망치를 들다』가. 무소유와 소유가. 출생과 죽음이. 커피와 담배가.

폭력과 성스러움, 타나토스와 에로스, 좀비란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의 산물임과 동시에 내가 타인의 권력에 종속되어 영혼도 정신도 없는 텅 빈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산물이며∙∙∙ 이렇게 다독여도 욕지기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뻑뻑해진다. 번역이 수작업임을 증명하는 통증이다. 그럼에도 소녀의 고통을 속속들이,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통증에 비할 바 아니다.(140쪽)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란 인물이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 할 때『라스콜니코프(들), 망치를 들다』란 번역물 속 짝퉁 라스콜니코프는 극단적으로 본능에 치우친 인물이다. 변동림은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며 종내에는 엽기적인 인물을 번역해 내는 과정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 이외에 ‘모비딕’을 드나드는 인물들도 이러한 짝패 사이를 오가며 어떤한 형태로든 무언가를 대변하고 있고 저항하고 있고 갈등하고 있고 그로 인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건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도 이런 형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네이버)
(사진=네이버)

동네 구석구석 카페를 섭렵한다는 은희정은 왜 ‘모비딕’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그가 마시는 커피의 종류에 따라 분류, 정리된다, 고 밝힌 카페 주인의 지론에 의하면 은희정은 그에게 영연히 채집되지 않는 인물이다. 비약해 말하자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짝패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이가 생기니까 시간을 세게 되더라고요∙∙∙. (∙∙∙)시간을 세지 않는 삶, 시계를 보지 않는 삶. 덩달아 거울도 보지 않는 삶. 얘깃거리가 없는 삶. 덩달아 얘깃거리를 공유할 사람도 없는 삶. 이런 삶에서 유일한 동반자는 역시 미치광이 짝퉁 라스콜니코프 밖에 없나. 싫든 좋든 그를 거두는 것이 번역가의 소임처럼 여겨진다. 원저자, 즉 작가 옆에 붙어 있는 그림자처럼 쓸쓸한 존재, 볼모 이자 불임의 번역가, 그리고 신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이제는 자신의 창조주이자 아버지마저 떠나버리고 그야말로 소설 속에 홀로 남은 사생아. 둘은 어딘가 짝이 잘 맞는(그러니까 잘 맞지 않는!)부부 같은 데가 있다.(141쪽)

고뇌하는 자 변동림은 모비딕 근처 한의원에서 배 위에 돌 뜸을 맞다가 이소율의 소리를 듣는다. 옆방에서 들리는 이소율의 말끝에 위와 같은 각성의 지점에 다다르게 된 변동림은 한의원을 나올 때 몸과 마음이 모두 가뿐하다. 변동림은 그 순간 잃어버렸던『무소유』란 책을 찾는다.

이러한 고뇌는 창작을 하는 김건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변동림과 같이 삶이라는 텍스트의 복제자일 뿐임에 고뇌한다. 그는 자신의 근무처임 구청 놀이방에서 학구적이며 포그노그래피적인 사랑을 나눈 송은경을 우연히 보고 그녀가 그저 한 아이의 엄마이고 평범한 여자로 변한 것을 느끼게 된다.

정은희는 출산 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아이를 키워내지 못한다. 그녀는 동거인 최지호와 함께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바다로 간다. 뱃속의 아이를 고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정은희는 생명을 오롯이 고래로 전이시켜 태초의 자리로 되돌린다. 이송율은 허브가 자라고 있는 생명의 공간에서 그저 삶을 살아내는 역할을 한다. 생긴 걸 어떡하나, 계속 생겨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185쪽) 변동림의 눈에 이소율이 자주 스쳐지나가는 이유도 자각에 이르게 하는 어떤 생의 원동력을 그녀를 통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모비딕의 불편한 창가 자리에 앉아 글 한 줄 쓰지 않아도 항상 자족적인 천재의식에 젖은 작가처럼 커피 한 잔을 음미하는 여자. 청승스럽고 궁상맞을 법하지만 어째 웃기지 않는 여자. 어찌해도 여자처럼만 보이는 여자. 그런 그녀가 둘째를 가졌음을 변동림도 슬슬 알아차렸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버지니아 울프였다. 모든 것이 결핍이 아니라 잉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행여 버지니아 울프에게 뭔가 결핍이 있었다면 모든 것이 너무 넘쳐났다는 그 결핍이 아니었을까.(119쪽)

변동림의 시선이 다시 이소율에게 머문다. 이소율의 시선은 정은희에게 이어지고 이소율은 돌보아줄 사람도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았을 정은희를 떠올린다. 텍스트에 대한 변동림의 거룩하고 방대한 고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연민일 따름이지만 삶이 반복해 스쳐가는 지점에 그 사소한 온기가 자리한다.

다시, 스침을 반복하는 가운데 7년이 지난 어느 날, 김건우는 모비딕에서 커피를 내리는 유서정과 결혼하여 모비딕의 주인으로부터 카페를 인수받는다. 그곳을 드나드는 부족들의 말없는 촌장은 그의 아내 유서정이 맡게 되고 그는 부진한 창작활동을 접고 쌍둥이 남매의 육아에 전념한다. 골초인 김향안이 그를 기르기 위해 2년 동안 담배를 끊은 것처럼.

‘모비딕’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변주는 특별하달 것도 없다. 그저 다시, 스침들이 거듭되는 공간으로 역할을 반복할 뿐이다. 그 간극에서 모과 같은 은희정의 마지막 행적이 발견된다. 그 행적에서 다소 비약적으로 어머니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형태로 생명을 이끄는 그녀를 발견한다.

모비딕 앞, 모르는 여자가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넙죽 말을 건넨다. 뱃속에 아기 있어요? 모과처럼 커다랗고 뭉특한 얼굴은 표면이 현무암처럼 울퉁불퉁하다. (···)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오네요. 병원 가서 힘주면 나와요. 은희정은 또박또박, 하지만 천기누설 하듯 조심스레 목소리를 조금씩 죽여 가며 말한다. 그러고도 상대방이 이 귀한 충고를 따르지 않을까 봐 너무 걱정이 되어 한동안 이소율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이소율은 또 그녀 대로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모과 같은 얼굴을 응시한다. 얼핏 스칠 때는 몰랐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커다랗고 눈매가 서글서글하다. 예쁜 눈 위로 기다란 속눈썹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어딘가 포근하고도 서글픈 느낌 때문인지 언젠가 이 근처를 오가던 한 여자, 즉 정은희가 떠오른다. 모비딕 창가에 앉아 더치커피를 마시면서 이소율은 이 두 여자에 대해 생각한다. 모과의 말이 계시였을까.(202-203쪽)

병원 가서 힘주면 나와요. 은희정은 이소율에게 탄생의 비밀을 이야기 한다. 은희정의 얼굴은 이소율을 응시한다. 이소율도 은희정을 응시한다. 이러한 응시 끝에 이소율은 평범하고도 귀한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다. 병원 가서 힘주면 나온다는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를 이 말을 계시로 알아듣는 순간 한 세계가 열린다. 이처럼 느닷없는 타자와의 교감은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길을 응시하는 것은 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몸을 맡기지 않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을 지향하는 것을 응시하는 것이다, 라고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한다. 더불어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란 청각적인 행위며 말을 걸고, 알아듣는 행위라고 했다.

이러한 단서에 의해 마지막으로 발견한 은희정의 얼굴에서 채집되지 않으며 분류되지도 않는 그녀도 아니고 그도 아닌, 무성적인 존재로 아무런 간섭 없이 생명을 인도하는 타자의 얼굴을 발견한 것은 나만의 비약일지 모른다. 어머니도 아니고 누구도 아닌 은희정은 지금 우리들의 주변을 배회하며 가장 낮은 자세로 타자의 얼굴에 말을 걸고 있을 지도 모른다.

 

-김가경
2009년<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으로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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