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포지션 콜로키움이 진행되고 있다.(사진= 김규용 기자)
제2회 포지션 콜로키움이 진행되고 있다.(사진= 김규용 기자)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은 크게 실천비평, 이론비평, 비평에 대한 비평 등으로 구분된다. 실천비평이란 문학작품의 기본적인 의미의 이해, 심층적 의미의 해석, 그리고 가치에 대한 평가이다. 또 이론비평은 작품의 본질과 기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평가를 위한 용어나 개념을 정의한다.

그리고 실천비평은 이론비평에 대한 합리성과 체계성을 갖출 수 있다. 마지막 비평에 대한 비평으로 실천비평과 이론비평에 대해 이해와 해석, 평가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비평에 대한 비평이 메타비평(metacriticism)이라고도 불린다. 문학비평론은 문학비평에 용어와 개념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와 비판적 검토를 통해 사회적·역사적인 맥락 속에 문학비평이 갖는 의의를 말한다.

비평문학의 존재는 문학에 대한 혁신과 살아 숨 쉬는 문학으로 만들어 준다. 비평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잡아간다. 비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태만으로 흘러간다. 인간의 삶에서 비평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의 문단 내에서는 시와 비평문학에 대해 많은 위기설이 돌고 있다. 비평문학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절규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은 비단 문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문학도 비슷한 상황이다. 더 이상 독자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문단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

지난 29일 “제2회 포지션 콜로키엄 2019 : 문학, 시, 비평위기“가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는 시와 비평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점은 무엇이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짚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날 콜로키엄은 계간 포지션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며 100여명의 문학인이 참여했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남승원 평론가(사진=김규용 기자)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남승원 평론가(사진=김규용 기자)

이날 행사는 비평문학과 시 문학의 위기를 인식한 문인들에 의해 주최되었다.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콜로키엄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째 ‘문예지의 혁신 이후 시 비평’, 둘째 ‘최근 시 비평의 쟁점’, 셋째 ‘시 비평의 위기와 시문학의 위기’이다. 이날 사회는 남승원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첫 주제에 대해 장은영 문학 평론가가 발제를 하고 박형준 문학평론가가 대담을 하며 보충하는 내용이다. 출판자본으로 성장하는 문예지에 대해 비판했다.

첫 발언을 통해 장은영 평론가는 현재 문예지를 지루하게 만든 사람이 평론가라 지적했다. 본인도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2015년 신경숙 표절의혹으로부터 문예지의 혁신이 시작됐다. 신경숙 표절사건은 출판사가 자본논리 위에서 독점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대형 출판사측이 이를 무마하려한 것이 문제였다. 또 출판사가 형성한 문단과 문학의 위계에 대한 비판이 문단 내에서 시작됐다. 그러면서 문단의 비판은 출판자본과 역인 문예지의 비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장은영 평론가이다.(시진=김규용 기자)
장은영 평론가이다.(시진=김규용 기자)

이런 자성이 문학과 문예지의 공공성 회복에 집중되어졌다. 그로 인해 기존 문학에 대해 감수성과 패러다임이 거부되었다는 것. 그리고 권력이 집중된 문예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2015년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매체가 출판자본의 요구에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다. 장 평론가는 자본을 획득한 문예지가 공동체로 군림하며, 소수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봤다.

일련의 사건으로 ‘비평의 최소화’가 특징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를 2015년 7월에 등장한 ‘악스트’를 예로 들었다. ‘악스트’는 비평 없는 문예지이다. 그러면서 장 평론가는 강동호 평론가의 말을 인용했다. 강 평론가는 저서 ‘지금, 문예지’를 통해 “평론가가 한국문학의 장을 지탱하고 유지해온 주체로 봤다. 한국문학 시스템 붕괴는 평론가의 비평 효용성이 임계점에 다 달았다.” 말한 바 있다.

장 평론가는 강 평론가의 말한 바에 대해 대체로 긍정을 보였다. 그것은 이후 창간되거나 리뉴얼된 문예지에서 특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출간된 문예지는 문학과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은 방식을 시도했다. 창비가 ‘문학3’, 민음사가 ‘릿터’ 문학과사회가 부록형식의 ‘하이픈’을 발간한 것이다.

장 평론가는 기존 문예지의 변화도 주목했다. 시 전문지들이 월평과 계간평 등을 없앴다는 것. 문예지들이 없앤 꼭지에 리뷰나 블라인드 시를 게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나마 종합지에 비해 전문지는 비평을 유지하며 형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는 비평이 광범위한 텍스트에서 개별적 소규모 텍스트로 축소될 것이라 내다봤다. 즉 시 전문지는 시 쓰기 공동체의 형태로 변화 할 것. 시는 각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 이 자체가 문예지를 지속시키는 동력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문예지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 개방적인 자세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혁 평론가이다.(사진=김규용 기자)
기혁 평론가이다.(사진=김규용 기자)

비평은 실패할 논쟁이라도 활발해야 한다.
 
‘최근 시 비평의 쟁점’이란 주제로 기혁 평론가가 발표를 시작했다. 기 평론가는 ‘최근 시 비평의 쟁점’을 얘기하며 ‘최근’의 범주를 정했다. 시 비평의 출발은 문학사적 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문학사를 경유한다고 말했다. 기 평론가는 최근 이슈에 대해 ‘포스트 미래파’, ‘4.16’,‘친일 문학상’, ‘촛불혁명’,‘대필 파문’, ‘문단 내 성폭력’ 등을 꼽았다. 2010년대 사건이지만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정의했다. 

기 평론가는 현장의 모든 비평이 당대의 문학사로 기입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사에 기입되기 위해서는 개인·사회의 요청이 응답과 맞물릴 때이다. 이것이 ‘삶이 운동 중이다’를 말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사적으로 비평가 개인의 의견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비평가의 삶과 작품이 의식적 마찰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다. 이것이 운동중인 삶에 문학이 투영되어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평은 특정 유행이나 담론이 아니며 명제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기 평론가는 현재 기술되고 있는 문학사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학사 기술에서 선택과 배제에 대한 메커니즘적 문제는 아니다. 문단의 권력. 한정된 장르. 외부의 개입이 문제. 이러한 결과로 문학사가 잘못 쓰여 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문학사는 진정한 문학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독자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시인도 비평도 유투브나 먹방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문학사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존의 문학사를 해체할 독법이 필요한 시기라 말했다. 이러한 문학사 문제를 해결할 담론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해 비평했다.

기 평론가는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실패를 예감하면 점점 말을 아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실패가 두려워 말을 아낀다면, 그것으로 지연되는 실패가 생긴다면, 말을 아낀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대가 비평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시대를 “암묵적 시기”라 말했다. 역설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비평의 허점을 줄인다. 비평이 무관심하면 문학이 투명한 텍스트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한 현실은 문학과 삶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평이란 실패를 피력하는 논쟁과 의견일 지라도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혁 평론가이다.(사진=김규용 기자)
이성혁 평론가이다.(사진=김규용 기자)

이성혁 평론가가 나서며 주제 ‘위기 속의 비평과 시의 미학적 윤리’를 발표했다. 이 평론가는 ‘문학은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비평은 항상 지금이 위기라는 비상벨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쟁점은 감지되는 위기를 위기라 생각지 않는 것. 위기에 대해 무뎌지는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며, 세월호 가대위(가족대책위원회)를 조직한 희생자 가족들은 참사에 대해 진상규명을 원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이전처럼 살수 없게 됐다. 정부는 이 참사에 대해 단순 교통사고 취급 했다.

끝까지 세월호 가대위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그 요구로 한국사회가 축적된 병폐가 파헤쳐지는 계기가 된다. 이 평론가는 이것이 시이며 예술이라 표현했다. 조정환 평론가도 2015년 “예술인간의 탄생”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이하는 발언 내용이다. “가대위는 공식적인 분류에 들지 않는 예술가 보다 더 예술가적 사유와 미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 예술 작품보다 더 큰 예술적 감응을 불러일으킨 사례”라 칭했다.

이 평론가는 예술작품에만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조 평론가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사회가 더 이상 이대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 힘이 바로 예술적 힘이라 말했다. 이는 가대위가 바로 아방가르드였다고 평했다. 가대위는 현실을 시화하며, 대중의 변화를 이끌어다는 점. 사회적으로 시와 예술이 충만하다는 것을 일깨웠다고 했다. 
 
이 평론가는 촛불혁명으로 2년째 새 정부 들어서며 사회는 혐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명이 멈춘 듯하다. 또 촛불을 일으킨 사랑의 힘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혐오의 정동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빨갱이를 혐오하는 태극기 부대. 일베를 넘어서는 혐오담론. 난민 혐오는 점차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이러한 상황을 무심히 보고 있는 비평가들에게 자성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묵인은 또 다른 참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문학이 가대위처럼 혐오를 사랑의 힘으로 전복해 나가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시문학의 위기의 근원을 투시해야 한다. 현재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는 아방가르드에 대해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평과 시문학이 위기를 위기에 의한 자기 주체성을 만드는 길이라 강조했다.

이날 콜로키엄은 사회적인 이슈가 결코 문학과 시, 비평과 무관하지 않으며 시와 비평은 사회적인 파수꾼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되었다. 비평이 비평을 받고 실패할 지라도 비평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러한 명제처럼 시와 비평이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 원동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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