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7-10 13:31 (금)
[기획특집] 작가를 찾아서... 최명희 편
상태바
[기획특집] 작가를 찾아서... 최명희 편
  • 김규용 기자
  • 승인 2019.09.27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혼불문학관이다.(Graphic by kgy)
혼불문학관이다.(Graphic by kgy)

시시때때로 엎드려 울기도 했다. 마치 갚을 수 없은 빚을 지고 도망을 다니는 심정이다. 그래서 항상 외로움과 불안함에 떨어야 했다. 이야기를 쓰지 않기 위해 자료만 쌓아놓고 한눈을 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조상의 혼불에 휩싸여버렸다.

마치 하수인처럼 밤을 지세며 본적도 없는 넋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시대적 아픔과 한 가문이 무너지며 사그라진 혼불들이 간절한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지만,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를 찾아 밤잠을 설친다. 동구 밖의 해묵은 장승처럼 붙박이로 보이지 않는 손에 사로잡혀, 마치 큰 칼을 목에 쓰고 있는 서러운 마음으로. 홀로...

최명희 작가의 서재 재현.(Graphic by kgy)
최명희 작가의 서재 재현.(Graphic by kgy)

원고지에 글을 쓸 때 왠지 모르게 손가락으로 바위를 새기듯이 글을 쓰는 것만 같았다. 기능 좋은 쇠붙이나 날렵한 끌을 가지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 손끝에 모아 한마디 한마디로 그들의 삶을 파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풍화나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느 날인가에는 샘을 이룰 수 있다면...  

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전북 전주 태생이다. 1980년 1월 1일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었다. 소설가로 정식 등단하고 이듬해인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공모에 1981년 장편소설 ‘혼불’로 당선되었다. 소설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명희 작가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과제가 있었다고 한다. 최초 2,000매 정도의 원고지로 30년의 세월을 녹여내려 하였다. 그러나 조상들의 목소리는 한 없이 들려왔다. 결국 소설 혼불은 장편에서 더 장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명희 작가에게 누군가 따로 숙제를 준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주체할 수 없는 본인의 의지라 했다. 그러한 내용을 생전 작가가 밝힌 내용이 있다.

작가의 생전에 전했던 말

'혼불' 이란 말은 사전엔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향인 전라도에는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입니다. 고향사람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혼이 빠져나가며 혼불을 만든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사람들의 혼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혼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바로 우리가 가장 암울하고 피맺힌 삶을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이야기입니다.

‘혼불’의 이야기의 배경은 작가의 아버지가 살았던 고봉마을이다. 시대적 배경도 1930년 일제강점기로 문화적 핍박이 극에 달해 있을 때이다. 민족의 운이 암담했고, 민초들은 절대적 빈곤이 국토를 짓누르고 있었다.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나라이지만, 조선의 마을들은 아직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식민지화 되어버린 조선이 조선의 얼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중적 시대상황.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절망과 분노의 절규, 사랑과 시기, 희망의 노래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의 혼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작가가 생각했었던 이야기의 분량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려 17년간을 그녀에게 조상의 혼들은 처절한 삶의 이야기를 쏟아냈던 것이다. ‘혼불’을 쓰면서 작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고독과 싸워야 했다. 작가의 삶의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조상들은 강점기의 삶이 처절했을 것이다.

작가의 만년필과 혼불 원작.(Graphic by kgy)
작가의 만년필과 혼불 원작.(Graphic by kgy)

여기서 작가의 생전 했던 말을 들어본다. 

‘언어라는 것은 민족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지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소설 ’혼불‘로 사라져버린 우리 민족의 지문을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수 천 년의 삶이 녹아 있는 우리의 모국어가 국제화며,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라며 퇴색되는 일이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모국어가 단순한 기호로 흩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최명희 작가가 혼불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4월부터다. 1997년 10권의 원고를 종료하기까지 만 17년의 세월을 통해 완성했다. 1930년대 남원마을의 한 문중의 전통과 경제적 토대가 무너져 내린다.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 3대가 살아가는 처절한 삶의 현장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인근의 농부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해학과 사랑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소설 ‘혼불’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전 10권이 출간되었다. 

최명희 작가의 사진이다.
최명희 작가의 사진이다.(Graphic by kgy)

글로벌 시대는 우리들 곁에 다가와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발전하는 세계의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그라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헛헛한 심정을 채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름 모를 시골에서 만나는 포근한 정겨움은 아마도 그리움일 것이다. 좁다란 고샅길에서 마주치는 그리움이라는 친구.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는 길을 걷다보면 작가가 만났던 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 작가는 ‘혼불’을 빼앗긴 아니 민족의 생명을 빼앗긴 처절한 암흑의 시대. 그러나 이러한 절박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혼불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남원은 춘향의 절개와 만인의총의 저항의 얼이 담긴 고장이다. 동학혁명의 성지이며, 국악의 성지이다. 또한 문학작품 ‘춘향전’, ‘흥부전’, ‘만복사저포기’등의 산실이기도 하다. 또 정유재란 때에 도자기의 조공들이 일본에 끌려갔던 혁명과 예술의 고장이다.

남원의 이러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또 최 작가는 유년시절 노봉마을을 아버지와 방문한 적이 있다. 아버지 고향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선이 망했지만, 새 날이 올 것을 믿고 살아왔던 앞전 세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뿌리의 확인과정을 거쳤다. 

최 작가는 조상들의 삶을 복원하며 우리의 것에도 애착이 많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남원의 매안 이씨의 3대 종부의 삶과 죽음이다. 노봉마을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소설 ‘혼불’의 시작이 댓잎이 사르락 사르락 갈리는 소리로부터 시작한다. 강모와 사촌 여동생 강실이가 아픈 사랑의 흔적이 묻어나온다. 

방문자들이 소원을 남긴 길.(Graphic by kgy)
방문자들이 소원을 남긴 길.(Graphic by kgy)

강실이가 사촌오빠 강모와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선을 넘어 벼랑으로 내몰린 그녀의 삶이 가슴시리다. 강모가 술집 기생과 만주로 도피하며 홀로 남겨진 강실이 겪었을 아픔을 처절했을 것이다. 강모와의 정사를 벌인 소문이 퍼지며, 춘복이라는 인물이 양반집이던 강실을 탐을 낸다. 또 이목을 속이고 남몰래 동거를 하던 옹구네가 양반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러한 정사사실을 소문을 퍼트린다.

복수심으로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강모의 아내 효원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처지이기에 가슴앓이를 한다. 시기를 같이 하여 춘복은 탐을 내던 강실을 겁간해 강실은 임신을 하게 된다. 효원은 강실을 멀리 보내려고 준비를 한다. 이런 강실을 이번에 옹구네가 납치를 하며 상황이 변한다.   
 

혼불문학관이다.(Graphic by kgy)
혼불문학관이다.(Graphic by kgy)

같은 시기에 이씨 문중 노비인 침모 우례의 아들 봉출이 성장한다. 상전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청암부인의 묘에 몰래 묘를 썼던 당골네가 멍석말이를 당한 원한을 똬리 틀며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가문의 몰락과 시대적 비판이 날카롭게 어우러지며 암울한 시대상을 거쳐 간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는 비록 허구인 소설이지만, 사실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제강점기까지 남아있는 양반과의 계급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한 이는 강모의 사촌형들인 강호와 강태이다. 이러한 등장인물들로 인해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며 이야기를 탄탄하게 하고 있다. 그러며 삶과 죽음의 과정을 작가는 우리의 풍속들에 대해 아름답고 정교하며 정갈하게 표현했다. 혼례와 장례절차, 유자광과 조광조의 사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풍습과 놀이 문화 등이 세심한 묘사를 통해 마치 보고 있는 듯 그려냈다.

천추락 만세향 -소설 '혼불' 중에서

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쪽으로 흘러내리는 적봉과 벼슬봉의 산사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 만세향을 누릴 만한 곳이라 하고 이르셨다.

최명희 작가을 기리는 혼불문학관은 한옥으로 지어졌다. 생전 사용하던 소장품류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중 눈에 뛰는 것은 역시 만년필과 혼불 원고이다.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세시풍속과 관혼상제 전통생활 방식에 대해 표현해 놓아 우리 민족의 전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치되었다.

전시실 내에 전통놀이 모습 재현.(Graphic by kgy)
전시실 내에 전통놀이 모습 재현.(Graphic by kgy)

청호 저수지는 혼불문학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저수지 조성을 청암 부인이 했다.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청호저수지는 감회가 새롭게 다가온다. 문학적 작품으로 이 마을이 살아나는 것이다. 작품이 없었다면 이 마을은 그저 여느 마을로 여겨졌을 것이다. 소설 ‘혼불’을 탈고하고 세상과 등을 진 작가. 혼불로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 그리고 삶을 밝히고자 했던 최명희 작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작품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 쉬며 ‘혼불’을 읽는 각자의 선생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