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문학제가 열리고 있다(사진=김규용 기자)
심훈문학제가 열리고 있다(사진=오원숙 기자)

소설 '상록수'로 잘 알려진 작가 심훈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심훈문학제가 충남 당진 심훈기념관에서 지난 30일  열렸다. 심훈(1901~1936)“상록수”의 저자. 본명은 대섭(大燮)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로 계몽운동에 힘쓴 작가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호는 해풍(海風)이다. 작가는 1901년 서울 노량진 태생으로 1915년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다. 1917년 조선 왕족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며 투옥되며 경성제일고보에서 퇴학을 당했다.

4개월 후 출옥해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항주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한다. 1935년에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현상소설에 당선된다. 이듬해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생전 작가는 일제에 저항하는 언론인이자 문학인·영화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생전 심훈의 작품 활동과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근대사의 기념비적이다. 이런 심훈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기조연설중인 김종욱 서울대교수(사진=김규용 기자)
기조연설중인 김종욱 서울대교수(사진=오원숙 기자)

심훈문학학회는 이날 '심훈과 그의 시대'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도 열렸다. 기조강연을 통해 김종욱 교수(서울대)는 "작가는 민주주의 선각자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작가는 특권층의 권리를 내려놓고, 마지막에 당진에 내려와 농민과 함께 살며 소설 '상록수'를 썼다"고 역설했다. 또 김 교수는 "작가는 다양한 교우관계로 아나키즘,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을 두루 섭렵했다. 편협하지 않은 민주주의 선각자로 오늘날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선양했다.

이날 진행된 심훈문학학회 학술토론에서는 4개 분야별로 발제와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정치적사상과 관련된 문학적 표현 분야를 한경대학교 김찬기 교수가 ‘직녀성’에 대한 소고를 통해 발표하였다. 이어 엄상희 연구원이 심훈의 작품에 재현된 식민현실을 분석하기 위해 영화소설과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발표가 이어졌다.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영화 ‘상록수’의 명장면에 대한 발표했다. 심훈 문학에 나타난 실제 인물 형상화에 대한 고찰을 조선영 연구원이 진행했다.

이날 토론 패널로는 박금산 서울과기대 교수,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기자, 조용효 세계일보 문학기자, 최재봉 한겨레 문학기자, 황해경 연구원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김지영 (대구카톨릭대)교수가 맡았다.

발제중인 김찬기 교수(사진=김규용 기자)
발제중인 김찬기 교수(사진=오원숙 기자)

첫 발제에 나선 김찬기 교수는 “민족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이상주의 ‘직녀성’ 소고”라는 주제다. 심훈 선생의 ‘옥중서신’을 이야기 했다. 옥중서신은 선생이 3·1운동의 단순 가담자였으나 구속되며 걱정하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내용이다. 재판기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천도교 서울대교구장 장기렴, 목사, 학생 등 9명과 함께 지냈다. 그해 11월 8개월간의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으며 풀려난다. 옥중서신은 8월에 어머니께 보낸 편지이다.

아래는 선생이 어머니께 보낸 옥중편지이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적삼 차입해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 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자도 떼어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주홍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다운 듯 먼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 1919년 8월 29일

김 교수는 선생이 어머니께 보낸 ‘옥중서신’는 선생의 민족주의적 모습이 잘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몇 만이다”와 “더 크신 어머니”는 민족주의적 사상의 발로라 말했다. 또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는 민족주의적인 영웅적 사상에 대해 은유적인 표현이라 말했다. 선생은 ‘감옥’의 옥중생활을 항일투쟁의 의미를 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어린 나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고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깊었다고 말했다.

선생의 보수적 자유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측면의 설명이 이어졌다. 선생의 작품 ‘직녀성’을 예시로 들며 설명했다.

이하는 예시를 든 작품의 한 장면이다.

“그 뒤 장발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고 ‘근대의 연애관’이니 ‘연애와 결혼’이니 하는 따위의 책이 뒤를 달아 왔다. 인제는 방향을 변경해서 연애학을 책으로 공부시켜 가며 실지로 시행해볼 계획인 모양이다. 봉희는 책 제목에 끌려서 그런 책을 읽어보면서도 연애와 결혼의 상대자로는 세철을 책상머리에다가 앉혀놓고 생각하는 것을 장발이가 꿈에나 알 리가 없다.”

김 교수는 이러한 내용으로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자유연애가 의미하는 것은 자유주의를 표현한 것이라 했다. 그런 면에서 선생은 자유적 삶에 대한 사상과 의지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직녀성’의 일부내용은 선생의 자유주의적 사상을 표현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등장인물 ‘봉희’는 전형적인 당시의 한국여성으로 전통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참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사진=오원숙 기자)
참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사진=오원숙 기자)

하지만 세철을 만나며 자유연애에 대해 새로운 인식으로의 전환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의식의 변화하며 ‘깃발을 앞세우며 나아가는 광경’등의 상상을 통해 자유에 대한 영망과 전통의 공존이라 봤다. 이런 봉희의 사상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시대의 변화를 피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통적 사상과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표현한 것이라 했다. 작품을 통해 선생이 가지는 자유가 민족주의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선생의 이상주의에 대해 짚었다. 선생의 작품과 문학에 ‘자유연애’라는 테마가 이미 이상주의와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연예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 이미 ‘직녀성’을 통해 자율적인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미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는 연애관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녀성의 봉희가 연애학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새로운 사상으로 나아가는 의미로 이상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의사도외다. 사랑은 비 뒤에 무지개처럼 사람의 이상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목표외다. 사랑은 마치 물고기를 씩씩께하며 기이한 풀과 바위를 감추어 두며 크고 작은 배를 띄우는 깊이 모르는 바다와 같사외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싸우지 않으면 아니되겠사외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피를 뿜지 않으면 아니되겠나외다.

김 교수는 당시에는 민족주의, 계몽주의가 약화되는 과정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연애론”은 자유주의와 이상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한 근거에 대해서 ‘사랑’이란 소재를 통해 ‘이상’과 ‘자유’ 그리고 ‘새로운 연애학’이라는 내용이다. 등장인물 봉희가 추구하는 바를 통해 이러한 요소들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제를 마친 김찬기 교수에 이어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이 “심훈의 영화 텍스트에 재현된 식민현실 - 영화소설 ‘탈춤’과 시나이로 ‘먼동이 틀 때’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발제를 시작했다.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사진=김규용 기자)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사진=오원숙 기자)

엄 연구원은 “선생이 작품 ‘상록수’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 돌연 병사했다. 생전에 선생은 문필이 아닌 영화를 선생 ‘필생의 과업’이라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당시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짚었다.

먼저 영화 소설 ‘탈춤’이 일제 앞잡이에게 핍박받는 조선 연인을 영웅의 등장으로 물리치는 내용이다. 내용이 너무 신파적이며 통속적이라 평가되었다. 또 인물의 갈등과 박진감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청순가련형 여성인물을 남성화한 멜로드라마라고 이해되었다. 그 당시 인쇄 매체가 보여준 주제나 갈등구조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평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엄 연구원은 선생의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 1926년 이후에 주류 생각은 “눈으로만 보는 동작 묘사로는 풀어낼 수 없는 장르로 인식”했다며 “스토리의 단순함”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검열문제와 대중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주제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탈춤’은 사랑에 대한 문제, 부르주아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주제를 총체적으로 구체화 한 작품이라고 평을 했다.   

이어 시나리오 ‘먼동이 틀 때’를 설명했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이렇다.

광진은 감옥에서 10년 만에 출소한다. 광진은 아내 은숙을 찾아다닌다. 광진이 어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돈을 내려는데 지갑이 없다. 광진이 떨어트린 지갑은 일하는 아이 순이 오빠가 주워가버렸다. 순이가 광진의 식비를 대신 물어준다. 광진은 순이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순이는 식당으로 팔려온 후 아편쟁이 오빠에게 돈을 뜯긴다. 그러나 그녀에겐 앞날이 창창한 시인 애인이 있다. 광진은 어느날 순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된다. 감옥에서 벌었던 돈을 모두 주어 애인과 함께 멀리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편 광진의 아내 은숙은 남편의 감옥생활로 책장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 주변을 맴돌던 불량배 박철에게 겁탈 당하려는데 광진이 나타나서 박철과 싸우다 박철이 죽는다. 광진은 그녀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아내 은숙 임을 알고 놀란다. 그러나 곧 형사가 들이닥치며 광진은 또다시 잡혀간다. 은숙은 남편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부짖는다. 광진의 도움을 받아 떠나게 된 순이와 애인은 동트는 언덕에서 새로운 미래를 다진다.

엄 연구원은 이 작품에 대해 카프계의 한설야가 계급 투쟁적 비판을 한 바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선생은 반박하며 ‘검열의 문제, 열악한 자본, 영화인들의 처참한 환경,’등을 구체적으로 피력한다. 그러면서 혁명사상을 바탕으로 민중을 변혁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카프계 평론가들의 충고에 대해 비판했다. 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허황된 공론이라고 적극 비판했다. 이에 한설야가 말한 영화가 사회변혁의 무기가 되는 것은 공감한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과 다른 서사를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선생이 말했다는 것.
 
선생의 ‘먼동이 틀 때’가 말하는 것은 짓눌린 조선인의 얼굴이며 빈곤과 무기력을 이기고 나가야 한다는 것. 경서의 뒷골목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숨어있고 동트는 언덕을 보며 밝은 내일을 향해 가야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 작품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괴로워했다고 했다. 그의 꿈을 펼치는 것이 당시 시대적으로 검열과 자본의 현실을 못 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가 선생에게 장편소설로의 전환하는 계기된 것이라 설명했다.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이 “시각언어가 돋보이는 ‘상록수’의 명장면들”의 주제로 세 번제 발제가 이어졌다.

임 국장은 소설 ‘상록수’가 리얼리즘적이 부족한 대중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적인 요소를 이미지화하는 현실적 이미지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이미지를 묘사한 구조를 보면 소설적요소로는 좀 색다른 관점이 보인다.”며 네 가지의 명장면을 예로 들었다.

​첫 번째 장면은 아래의 동혁이 영신에게 프로포즈하는 장면이다.

 동혁이도 자신 있게 다져묻는다. 그 말에 영신의 입에서는 분명히 ”네!“하고 한 마디가 서슴치 않고 떨어졌다.

동혁은 불시에 그 무엇이 마음속에 뿌듯하도록 꽉 차는 것을 느꼈다. 그 만족감은 물에 불어 오르는 해면처럼 또는 한정 없이 부풀어 오르는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 터질 듯하다.

동혁은 벌떡 일어섰다. 팔짱을 팍 끼고 달빛에 뛰노는 바다를 바라다보고 섰노라니, 그 바다의 물결은 커다란 용광로 속에서 무쇠가 녹은 물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아 보인다. 바다 위가 아니라 바다 저의 가슴 한복판에서 용솟음치는 정열을 눈앞에 보는 듯하였다.

한 십 분 동안이나 동혁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영신의 눈앞에서 조약돌만 탁탁 걷어차면서 왔다 갔다 하였다.

임 국장은 이러한 내용은 당대 소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며 마치 카메라로 보는듯한 이미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바다가 2 · 3중으로 겹쳐 보이는 장면은 주인공의 마음이 선면하게 보이도록 구성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소설과는 차이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명장면으로 ‘제3의 고향’중 예배당 수업의 내용을 들었다. 아이들을 예배당에서 쫓겨나지 않은 아이들의 풀죽은 모습과 내쫓아진 아이들이 뽕나무 위에 올라가 배우려는 아이들이 있고 대조적으로 나무에 올라가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대치되며 하나의 장면처럼 연상되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영신이 칠판에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고 쓰는 장면을 임 국장은 영상적인 연출이 매우 뛰어난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예배당의 수업장면은 여러 장면을 동시의 사건으로 연출하며 마치 하나의 영화 프레임처럼 표현한 것을 기존 소설과의 차별이 된다고 설명했다.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사진=김규용 기자)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사진=오원숙 기자)

임 국장은 ‘불개미와 같이’의 한낭청의 집 회갑연 장면을 세 번째 명장면으로 소개했다. “이 내용은 한낭청이 회갑연을 하는 장면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약 200여명의 사람들이 장면에 가득 차있는 밀도 높은 장면을 연출한다. 또 이중 30여명이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장면이 한 화면에 담긴 것처럼 표현되어있다. 또 줄타기하는 줄로 마치 화면의 위, 아래를 구분하고 있는 거처럼 표현하고 있다. 후반에 영신이 아이들과 기부금을 요청하기 위해 회갑연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영신의 장면을 설명한 것은 영화의 미장센(영화 프레임의 화면배치와 구성을 일컷는다)의 극치”라고 설명했다. 

임 국장이 지목한 마지막 네 번째는 농우회의 두레 장면이다. 농우회 회원들인 청년들이 두레를 시작하며 동네사람들과 중모리 가락으로 달구질을 한다. 달구질하는 소리가 중모리 가락에서 자진모리로 접어들며 마지막 휘모리로 변주되는 과정은 영화의 장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설의 영화적 시각적 관점을 통해 다양한 문학적 표현방식과 영화에 대한 욕구가 작가에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장면들이 당시 상록수가 리얼리즘이 부족하다는 평에 대해 반하며, 현대소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영상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선생의 영화적 시각이 작품에 잘 녹아있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라 설명했다.

​네 번째로 중앙대 조선영 연구원은 “심훈 문학에 나타난 실제 인물 형상화 방법 고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조 연구원은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을 말하며, 역사적 실제 인들이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또 선생의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마라톤 영웅이었던 손기정 선생이 그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선생은 사상적인 개념을 떠나서 삶의 체험과 주변의 소재를 차용하며 실제 인물을 모델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선생의 삶이 그렇듯 주변의 독립운동가, 민중운동가 등이 대상이 되었고 그들을 영웅화 시키는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시대적인 아픔을 설명하듯 영웅으로 이야기가 되는 작품 속에서 시대적 좌절을 겪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훌륭한 영웅이 시대적인 불운으로 좌절된 아픔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시는 ‘박군의 얼굴’이라는 선생의 시다.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
여보게! 박 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

​알코올 병에 담가 논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마르다 못해 해면 같이 부풀어 오른 두 뺨
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
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인가?

​쇠사슬에 네 몸이 얽히기 전까지도
사나이다운 검붉은 육색 肉色에
양미간에는 가까이 못할 위엄이 떠돌았고
침묵에 잠긴 입은 한 번 벌리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더니라.

​4년 동안이나 같은 책상에서
벤또 반찬을 다투던 한 사람의 박은
교수대 곁에서 목숨을 생으로 말리고 있고
c社에 마주 앉아 붓을 잡을 때
황소처럼 튼튼하던 한 사람의 박은
모진 매에 창자가 꿰어져 까마귀밥이 되었거니.

​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上海)의 깊은 밤
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던 이 박 군은
눈을 뜬 채 등골을 뽑히고 나서
산송장이 되어서 옥문을 나섰구나.

​박아 박 군아 × × 아 !
사랑하는 네 아내가 너의 잔해(殘骸)를 안았다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동지들이 네 손을 잡는다.
이빨을 악물고 하늘을 저주하듯
모로 흘긴 저 눈동자
오! 나는 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오냐 박 군아
눈은 눈을 빼어서 갚고
이는 이를 뽑아서 갚아주마!
너와 같이 모든×를 잊을 때까지
우리들의 심장의 고동이 끊어질 때까지

‘상해의 깊은 밤’이란 구절로 미루어 박 군은 바로 ‘박헌영’이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25년 조선 공산당 사건으로 투옥되는 박헌영은 1927년 11월에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조 연구원은 창작시기와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박헌영의 당시 육신의 상황을 보고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R씨의 초상’은  여운형 선생을, ‘선생님 생각’에서는 벽초 홍명희 선생에 대한 현실의 영웅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이 실제 주인공을 바탕을 작업된 것은 확실하지만, 작품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가 학자들마다 견해 다르다는 입장을 정확히 했다.

끝으로, 조 연구원은 선생의 시와 소설들이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킨 점에 대해 평했다. 시에서는 좌절과 비통함이 더 진하게 표현되며, 소설에는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영웅상을 만들고 같이 연대하여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실제 인물의 서사화를 통해 영웅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극대화 할 수 있었다고 봤다. 이런 점이 선생의 실제인물 형상화가 낳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말했다.

이날 학회는 악 1시간 반가량 이어졌으며 이후에 약 1시간 더 추가 패널들의 선생에 대한 진지한 작품의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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